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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7.04.23 12:45

2017년 누가복음 17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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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17강 메시지                                                                                                            천모세

누가복음 8:1-21

 

 

말씀을 듣고 결실하는 자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누가복음 8:15)

누구든지 일을 시작했으면 그 일에 좋은 결과를 내길 바랍니다. 믿음생활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산다면 믿음의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좋은 결실을 하는 비결입니다. 예수께서 이 비결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좋은 결실을 한다고 하십니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1-10)

1절부터 봅시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각 성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셨습니다(1). 그 복음을 전하실 때 함께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열두 제자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막달라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러 여자가 함께 하였습니다(2,3). 그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과 열두 제자를 섬겼습니다.

각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와 큰 무리를 이루니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4). 5절부터 봅시다. 예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더러는 바위 위에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습니다.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습니다(5-8).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외치셨습니다.

두 귀가 있다고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가 들을 수 있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누구일까요? 81절에서 3절을 볼 때, 열두 제자와 또 어떤 여자들입니다. 이들은 들을 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있어서 예수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한 제자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9절을 봅시다. 예수께 나아와 이 비유의 뜻을 물었습니다(9).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예수께 물을 수 있고, 또 묻습니다.

예수께서는 또 이 물음에 답하십니다. 믿는 자의 특권입니다. 예수께 물으면 예수께서 답하십니다. 우리가 이 특권을 잘 누려야 하겠습니다. 특히 제가 잘 누려야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어떻게 답하셨습니까? 10절을 봅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십니다(10). 여기서 너희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알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집중하였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기 소유로 섬겼습니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예수님을 따랐을까요? 10절 말씀을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이로 볼 때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나라의 향기를 맡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다고 하십니다. 비밀은 감추어져 있습니다. 비밀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찾고자 하는 사람이 찾습니다. 베드로는 어부로서 열심히 그물을 던지지만 빈 그물을 씻어야 하는 허무한 삶을 살았습니다. 세리 레위는 열심히 돈을 좇았고 목표한 돈을 얻었지만 공허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런 것을 체험하고 정말 무엇을 좇아야 할지 고민하였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시 그물을 버리고, 또 세리 직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이같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기 위해 자신의 것을 버리는 결단이 있는 사람, 자신의 힘을 다하여 알고자 하는 자에게 알게 하십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11-15)

1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에서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십니다. 씨는 아주 작고 대부분 새카만 것이 보잘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씨를 하찮게 여깁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씨를 귀하게 여깁니다. 씨는 작지만 씨를 뿌리면 열매를 거둘 수 있기 때문입니다. 씨에는 생명의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씨가 열매를 맺으려면 땅에 떨어져야 합니다. 땅이 씨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열매가 달라집니다.

첫째, 12절을 봅시다.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마귀가 가서 그들이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입니다. 길가는 말씀의 중요성을 모르는 자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들어도 싹이 나기도 전에 빼앗겨 버립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마귀는 말씀을 빼앗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따르고자 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원이 없으면 금방 마귀에게 빼앗겨 버립니다.

둘째, 13절을 봅시다.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을 당할 때에 배반하는 자입니다. 바위가 있으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말씀이 뿌리를 내려 열매를 맺으려면 바위를 없애야 합니다.

셋째, 14절을 봅시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지면 씨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합니다.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을 빼앗겨 버리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자라는 것보다 이것들이 더 빨리 자라서 온전히 결실하지 못합니다. 말씀 따라 살아보려고 하기는 하는 것 같은데 열매가 온전하지 못합니다.

15절을 봅시다. 마지막으로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입니다. 온전히 결실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결국이 하나님 나라에 있게 되는 온전한 결실을 맺습니다. 마태복음 548절을 보면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하심으로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온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온전한 결실을 맺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15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있으려면 인내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잘 인내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어떤 자들이 인내를 할까요? 정말로 무언가를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사람이 인내합니다. 지켜야 할 것이 없는 사람은 그 때 그 때 상황과 감정에 맞추어서 살아갑니다. 저 자신을 돌아볼 때 저에게 정말로 지켜야 할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정말로 지켜야 할 것이 없어서 무슨 일마다 꼭 그렇게 해야 하나?’ ‘좀 더 편한 길은 없는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그래서 유혹에 시달리고 타협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제가 무엇을 지켜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말씀을 듣고 지켜야 합니다. 무엇을 듣는 지가 중요합니다.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무엇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자기 좋을 대로 살아가는 저에게 말씀을 들려주신다는 사실이 은혜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게 된 은혜를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되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말씀을 삐딱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세로 읽어야 합니다. 길 가와 같은 마음, 바위와 같은 마음, 여러 이생의 염려로 가득한 마음으로는 온전한 결실을 할 수 없습니다.

길 가 같은 마음은 갈아엎어야 하고, 바위는 깨고 파내야 합니다. 염려와 향락의 기운을 뽑아내야 합니다. 이를 한 번 두 번해서는 안 되고, 계속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금방 딱딱해지고, 속에 있는 바위는 언제 또 그렇게 커졌나 싶을 정도로 금방 커집니다. 염려와 향락은 어찌 그리도 쉽게 마음속에 떡 자리 잡고 있는지 믿음보도 훨씬 더 빨리 자라납니다. 그래서 인내하며 투쟁을 해야 합니다.

인내를 해야 온전히 결실을 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인내하는 것이 저에게 불가능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나라는 참 좋은 것 같지만 내 자신이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말씀을 들어도 금방 빼앗겨버리는 자신, 잠시 말씀을 받으나 바위와 같이 고집불통, 완고한 자신을 볼 때에 소망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갈수록 이생의 염려는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상황이 더 나아지기보다 더 힘들어 질 것 같아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인내하고 계속하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보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소감을 쓰는 가운데 먼저 말씀에서 멀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무엇보다 기도해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인내하지 못하고 말씀 읽고 기도하고 소감을 쓰는 것을 멈추어 버리면 누구든지 금방 길 가 같은 마음, 바위 같은 마음, 이생의 염려에 사로잡혀 버립니다.

그러면 계속해서 착하고 좋은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오늘 본문 1절부터 3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며 복음을 전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들은 때로는 예수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고, 또 불만도 있고, 또 불평도 하고, 심지어는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하기도 하였지만, 이들은 어찌하든지 인내하며 예수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하였을 때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였고, 하나님 나라를 속에서부터 사모하는 착하고 좋은 마음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지금도 우리에게 믿음의 본이 되어 별과 같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스스로 삼가라(16-21)

16절을 봅시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둡니다.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말씀을 듣고 지켜서 말씀이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나에게 아무리 큰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말씀을 듣고 지키고자 할 때에 등경 위에 두어 등불이 비추이듯이 말씀이 드러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다 하십니다(17).

18절을 봅시다.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라하십니다. “누구든지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줄로 아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하십니다. 말씀을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을 스스로 삼가는 자는 더 많은 말씀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스스로 삼가지 않으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말씀도 빼앗길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삼가셨습니다. 19절을 봅시다. 예수의 어머니와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로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어떤 사람이 예수께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서 있나이다.”하고 알렸습니다(19).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21절을 봅시다.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하셨습니다. 예수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결실이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삐쳐서 예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여 초대교회의 기둥들로 쓰임 받았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더 받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들은 바 말씀을 지키고 인내해야 온전한 결실을 할 수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저는 지금 어떤 말씀을 듣고 지키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저는 올 한해를 시작하며 디모데전서 611,12,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이 방향이 되어 승리할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레지던트 연차가 올라가면서 처음보다 근무환경이 좋아지는 데도 저의 마음에 힘들다 못 하겠다하는 불평이 점점 생기고, 꾸준히 먹던 일용할 양식 말씀도 피곤하다고 못하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말씀 공부하러 나왔던 형제, 자매는 바쁘다며 연락을 끊었습니다. 같은 길을 가는 동역자인 아내와 함께 하며 서로 위로를 받고 힘을 얻기를 바라는데 동역자의 업무는 갈수록 많아져서 함께 할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네 살 된 첫째 아이와 이제 같은 집에 있게 되었는데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겠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저 힘만 들었습니다.

저는 어찌하든지 말씀이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해서 김해까지 가서 말씀공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목자님이 왜 김해까지 말씀 공부하러 오는지 진지하게 물어 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지하게 영생을 얻고 싶다고 답하였습니다. 그러나 영생을 얻고 싶다고 하면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 말에 아니라고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말씀을 듣고 말씀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이를 지키고 인내하고 있지 못한 자신이 발견이 됩니다. 응급실에서 내가 감당하기에 벅찬 환자들을 보면 두렵습니다. 다른 과와 마찰이 생기기도 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여러 상황들에 마주하면 말씀은 어느 새 마귀에게 빼앗겨 버리고 제 의지와 혈기로 어찌하든 해 보려 하나 안 되어서 자꾸만 죽겠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일하러 가는 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저는 사람들에 대해 기대하는 것을 포기하고 꾸역꾸역 참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씀을 지키고 인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대로 온전한 결실을 하고 싶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까? 저는 예수님을 보기로 했습니다. 예수님을 다시 보는 가운데 저는 기도하지 않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마음 가운데 예수님은 없고, 제가 이것도 잘 할 수 있고 저 것도 잘 할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할 때 저의 입에서 도무지 못하겠습니다.’는 고백만 나왔습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께 묻고 예수께 듣고자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저를 네 번의 실패 끝에 절망하고 있을 그 때 제게 들린 말씀이 다시 들렸습니다. 광풍이 두려워 바다에 빠져가는 베드로가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외쳤을 때, 즉시 그를 잡아주시는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만 엎드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외쳤습니다. 그리할 때 예수께서는 즉시 저의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저의 마음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평안함이 임하였습니다. 그 어디나 하늘나라였습니다.

제가 이제 믿음으로 유급 없이 의전원을 졸업하고 믿음이 좋은 새롬 목자님과 가정을 이루고 응급의학과에 전공의 수련을 받고 자녀도 축복으로 얻었습니다. 이제 내가 잘 할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이 제게 들어와 있음을 봅니다. 제가 어떤 열매를 맺고자 하는지 분명히 할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하나님을 떠나 제 정욕대로 살다가 죄로 고통하고 멸망할 저를 보시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는 예수님의 기도를 다시 듣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매일의 일용할양식과 기도, 매주 주일 예배와 소감 투쟁을 통해서 내가 정말 예수님을 붙들고 있는지 스스로 삼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해 보았자 그 열매는 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좋은 마음으로 지키고 인내하였을 때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나라가 그대로 드러날 소망이 있어 감사가 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자 나아온 제자들에게 온전한 결실을 하는 비결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결실하려면 이를 지키고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로 말씀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휩쓸리지 아니하고 말씀을 어떻게 들을 지 스스로 삼가야 하겠습니다. 우리로서는 할 수 없사오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인내하여 결실하기까지 때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각 사람을 붙드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누가복음 8:15)

2017 누가복음 17강 메시지 0801-0821 천모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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