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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29강 정여호수아

누가복음 17:20-18:8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8:8)

 

오늘 말씀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하나님의 지배와 다스림을 받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17:20-21)

20절을 봅시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예수께 물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임할 하나님 나라는 어느 특정한 때에 볼 수 있는 형태로, 어느 특정한 장소에 임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신앙의 목적과 방향은 항상 눈에 보이는 것을 향해 있습니다. 실제로는 돈을 좋아하고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하고 추구하는 하나님의 나라도 눈에 보이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볼수 있게 임하는 나라가 아니요, 또 어느 특정한 장소에 임하는 나라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너희 안에 있다고 하십니다(21).

하나님의 나라는 바리새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외적인 형태로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 즉 우리의 내면에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내 마음과 생각과 영혼이 하나님의 지배와 다스림을 받는다면 거기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외적으로 좋은 환경 가운데 살더라도 그 내면에 참된 행복이 없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탄이 그 마음과 영혼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탄보다 더 강한 자 되시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누가복음 11:22). 그가 오심으로 우리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죄와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며, 무거운 죄짐이 풀어지며, 병이 치유되며, 눈을 뜨며, 온갖 더러운 귀신의 세력이 쫓겨 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로볼 때 하나님나라는 예수님 바로 그 자신이십니다.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이요, 하나님의 일하심입니다.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일하심은 어디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그 사람의 내면 안에, 그런 사람이 모인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사는데도 내 안에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여전히 죄 가운데 계속 시달리고, 갈등하면서 천당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이는 하나님의 원수인 사탄과 악한 영들이 있어 우리 믿는 자들을 끊임없이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내 안에 있는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일이 심겨진 것처럼 너무 작고, 미미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는 자랍니다. 내 속에서 점점 더 세력을 얻어 공중의 새가 깃일 정도의 큰 나무가 될 정도로 자라 거대한 나라가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이 될 때가 옵니다. 그 날이 언제입니까? 인자의 날, 곧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에 완성됩니다. 그날이 오기까지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롯의 처를 기억하라(22-37)

22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또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주된 관심은 언제나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그 제자들에게 향해 있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이를 볼 때 제자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눈에 보이게 임하는 나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는 그 인자의 날만을 고대하면서, 그 좌우편에 앉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그들의 기대와 소망에 예수께서 찬물을 끼얹으십니다. 그런 인자의 날은 너희가 하루를 보고자 해도 보지 못할 것이라 하십니다. 그날은 제자들 세대에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람들이 저기 있다 여기 있다 할지라도 찾아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아야 합니다(23). 이는 번개가 하늘 이 끝에서 번쩍하여 저 끝까지 비치는 것처럼, 인자도 그 날에 번개같이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24). 하늘에서 번개가 칠 때는 온 세상이 다 압니다. 번개는 은밀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인자도 비밀리에 어떤 특정한 장소에 국한해서 오시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알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오십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아는 빛을 주께서 비추어 주십니다. 그러나 인자의 날이 임하기 전에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고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는 일을 겪으셔야만 합니다(25). 그 나라가 완성되려면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다 짊어지는 고난을 당하셔야만 합니다.

그러면 인자가 오시는 날의 세상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26,27절을 봅시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을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것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그리하였을 때 홍수에 휩쓸려 모두 멸망하고 말았습니다(27). 또 인자의 때는 롯의 때와도 같습니다(28). 롯은 소돔 성에 살았습니다(창세기 19:1). 우리는 소돔하면 성적으로 너무나도 문란하고 또 사람들이 포악하여 하나님께서 차마 두고 보실 수 없어서 심판하신 내용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 또한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지었다고만 말씀하십니다(28). 그들은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멸망을 당했습니다(29). 롯의 사위조차도 그 심판의 메시지를 농담으로 여기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인자의 오심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심판이 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자 곧 예수께서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할 것입니다(30). 우리가 일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중에 갑작스럽게 찾아 오십니다. 그러므로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아야 합니다(31).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아야 합니다(31). 롯의 처를 기억해야 합니다(32). 그가 세간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뒤로 돌이키다가 소금 기둥이 되어버린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없어질 재물로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만이 살게 될 것입니다(33).

34절을 봅시다.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자는데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합니다.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다면 부부이거나 가족일 것입니다. 그들은 같은 것을 먹고 같은 이불을 덮고 같은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도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합니다. 또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습니다. 맷돌을 같이 갈려면 서로 마음과 힘과 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둘이 엄청난 절친 사이입니다. 그런데도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을 버려둠을 당합니다(35).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같은 침대, 같은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오늘 내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느냐, 오늘 인자의 날을 대비하여 사느냐가 내일의 삶을 결정합니다. 그 일은 어디에서 일어납니까? 37절을 봅시다.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여듭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이 같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서 인자의 날을 기다리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18:1-8)

18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며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 우리는 낙심이 됩니다. 기대해 봤자 다시 낙심하게 될까봐 기도하는 것을 그만 멈추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도하다가도 낙심에 빠져 기도하기를 중단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기도하기를 멈추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해야 된다고 하십니까?

2절을 봅시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었습니다(3). 당시 과부는 가난하고 연약하고 불쌍한 사람의 대명사였습니다. 철저하게 남자의 부와 노동력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시대이기에 남편이 없는 과부는 그야말로 약자입니다. 그런데 이 힘없는 과부가 원수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원수가 과부의 남편이 죽으면서 남긴 재산을 빼앗았을까요? 아니면 하나뿐인 자식을 두들켜 패 버렸을까요? 어찌되었든 과부는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했습니다. 그래서 그 재판장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청했습니다(3). 불의한 재판장이 가난하고 힘없는 이 과부의 청을 들어줄 리가 없었습니다. 과부는 더 큰 설움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틈나는 대로 재판장을 찾아가서 졸랐습니다.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주소서!” 재판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계속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무시당해도 과부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그의 집으로, 직장으로 찾아갔습니다. 심지어 화장실까지도 쫓아 왔습니다. 결국 그 재판장이 어떤 결심을 하였습니까? 4,5절을 봅시다.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불의한 재판관이 과부의 원한을 풀어 주고자 결심했습니다. 너무 번거로워서, 과부가 계속 찾아올 것이 괴로워서 그렇게 했습니다.

과부가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불의한 재판장을 찾아간 이유가 무엇입니까? 원수에게 당한 그 일이 너무도 원통하고 억울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원한을 풀어줄 자가 그 재판관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과부는 수없이 거절을 당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그를 계속 찾아갔습니다. 그 끈질김으로 결국은 불의한 재판장도 굴복시켰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고 하십니다(6). 그러면서 말씀하십니다. 7,8절을 봅시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나”(7) 불의한 재판장에게 나아간 과부는 그 응답을 기대할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과부의 원한을 풀어 주었습니다. 계속 찾아올 것이 번거로워서 그렇게 했습니다.

이에 반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택하신 자녀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장과는 다르십니다. 불의하지 않으십니다. 공의로우신 재판장이십니다. 무엇보다 택하신 자들의 아버지이십니다. 그 자녀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가장 좋은 것으로 그 자녀에게 주시는 좋은 아버지이십니다. 이 하나님께 구하는 택하신 자녀들의 한 맺힌 기도는 어떻게 하실까요? 당연히 오래 참지 않으십니다. 속히 풀어주십니다.

그러면 택하신 자들의 원한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원수는 누구입니까? 바로 마귀 사탄입니다. 사탄은 우리로 끊임없이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도록 유혹합니다. 믿음과 소망 안에 머물러 있지 못하도록 압박합니다. 우리의 연약하고 죄악된 육체의 본성을 부추깁니다. 다시 죄에 넘어지게 해서 낙심에 빠지게 합니다. 우리가 낙심이 되는 것은 믿음생활 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내 모습과 실상을 계속 보는 것입니다. 이런 자신을 볼 때 이 죽을 몸이 과연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정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이런 우리에게 예수께서는 무엇이라 하십니까?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속히 풀어주시리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주를 택한 것이 아니요, 주께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주께서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우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것입니다(빌립보서 1:6). 그러므로 어떤 낙심의 때에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를 믿고 신뢰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최근 저도 낙심에 빠져 있었습니다. 믿음의 역사를 계승하고 나름 의욕적으로 섬기다가, 점점 책임질 일들은 많아지고, 해야 할일도 많아지니 몸과 마음이 부대꼈습니다. 목자로서 역량이 안되는 자신을 매일 마주 대하는 것이 괴롭고 힘들었습니다. 더구나 갑자기 형제장막에 불어 닥친 여러 일들로 인해 괴로웠습니다. 형제들이 힘들어 하는 부분을 계속 이야기 했는데, 목자랍시고 그동안 제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쓰리고 아팠습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저는 그야말로 여전히 맹인이요 귀머거리 같은 자였습니다. 제가 앞으로 언제까지 이런 실패와 실수를 반복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고, 갑자기 목자로 산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워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게 주께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같은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이, 기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의지하여 몸이 좀 많이 힘들어도 매일 아침을 깨워 양식을 먹고 기도를 하러 나갔습니다. 테니스를 섬기고, 동아리 박람회도 섬기고, 캠퍼스모임도 섬기고, 개강예배도 다 섬겼습니다. 주께서 힘을 다해 섬기는 학생들을 통해, 그리고 새롭게 보내주신 영혼들을 통해 제게 많은 위로와 힘을 주셨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은 지금, 다만 주의 저의 사랑하심을 믿는 믿음을 따라 기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실패의 때에도 저를 택하신 주께서 구원하여 주실 것을 믿고, 항상 기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 주께서 찾으시는 그 믿음의 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실패와 실수를 계속 할 것입니다. 탄식을 반복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주께서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속히 풀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항상 미쁘신 주께서 우리를 반드시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신실하신 주의 이 약속의 말씀을 따라 세상이 어떠하든지, 사람들이 어떠하든지, 지금 내 모습이 어떠하든지 낙심하기보다 항상 기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다시 오실 그날까지 주께서 찾으시는 그 믿음이 우리 심령에 늘 살아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누가복음 18:8)

2022년 누가복음 29강 메시지 1720-1808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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