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22년 누가복음 1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by 정여호수아 posted Mar 0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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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누가복음 1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누가복음 3:1-20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누가복음 3:8)

 

 

2022년 봄학기 누가복음으로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누가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 글을 썼습니다. 우리가 이번 누가복음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확실히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주의 길을 준비한 세례 요한에 관한 말씀입니다. 무슨 일이든 갑자기 되는 일은 없습니다. 준비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을 맞이하는 일에도 준비가 필요합니다. 어떤 준비가 필요합니까?

죄사함을 받게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1-6)

먼저 누가는 역사가답게 세례 요한이 사역을 시작할 때의 그 시대적인 상황을 알려줍니다. 1절을 봅시다. 당시는 가이사 아구스도의 양아들인 디베료가 로마 황제로 있은지 열다섯 해였습니다. 그때 본디오 발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있었습니다. 유대를 제외한 나머지 팔레스틴 지역은 헤롯 대왕의 아들들에게 분배되었는데, 예수님과 제자들이 주로 활동했던 갈릴리 지역은 헤롯,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역은 빌립, 아빌레네 지역은 루사니아가 맡았습니다. 크지도 않은 나라가 이리저리 갈라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심란합니다. 심란한 것은 정치상황 만이 아니었습니다. 2절을 봅시다.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라고 했습니다. 본래 대제사장은 한 명입니다. 또 종신제이고, 세습제입니다. 그런데 유대전통에 따라 대제사장을 세습한 안나스를 로마는 잘라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가야바를 대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가야바는 안나스의 아들이 아니라 사위입니다. 로마의 입김에 따라 대제사장의 자리가 왔다 갔다 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누구에게 임했습니까? 유대교의 최고 리더인 대제사장에게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만명이 넘는 제사장 그룹 중의 한 사람에게 내리지도 않았습니다. 빈들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유대교의 제도권 밖에 있는 그 시대의 아웃사이더인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빈 들은 그야 말로 빈 곳, 사람들이 사는데 필요한 것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곳입니다. 아무것도 없기에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자 할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이같이 빈 들에서 지내면서 하나님의 말씀 받기를 간절히 기다린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내 생각과 내 뜻으로 가득차 있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올 여지가 없습니다. 말씀없이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 생각할 때는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말씀 말고도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의지할만한 것이 있다 싶으면 그것을 붙들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나 자신을 발견한 사람, 곧 그 마음이 빈들과 같이 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립니다. 비어있는 그 마음의 빈 공간에 하나님께서 생명의 말씀으로 채워 주십니다. 그때가 바로 위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은혜의 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요한은 무엇을 했습니까? 3절을 봅시다.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그가 빈들에 있지 않고 그 빈들에서 나왔습니다. 나와서 죄사함을 받을려면 회개하고 자신에게 와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전파하였습니다. 그가 왜 이렇게 하였습니까?

4-6절을 봅시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쓰여진 말씀을 이루려 함입니다. 어떤 말씀을 이루려 함입니까?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 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왕의 행차를 위해 왕의 사자가 먼저 와서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합니다. 이처럼 요한도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어 주의 길을 준비하고자 합니다.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요한은 죄사함을 받게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그런점에서 볼 때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평평하게 하는 것입니다. 굽은 것을 곧게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의 삐딱한 마음, 높은 마음, 뒤틀린 마음들을 바로 잡는 것입니다.

예전에 저는 하나님이 나만 차별하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또 맨날 자기 마음대로 하시는 분이라 생각했었습니다. 또 하나님 없이도 나 혼자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는 산 같이 높은 마음을 가졌었습니다. 이렇게 패이고 높고 삐딱하면 하나님의 구원을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굽은 마음이 펴지고, 패인 마음이 채워지고 높은 마음이 낮아져야 합니다. 한마디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골짜기를 메우는 것이 어렵고, 산을 깎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우리 마음을 똑바로 하고, 낮추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사람이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주의 은혜를 바라면서, 계속 말씀을 읽고 듣고 받다 보면 조금씩이라도 고집스럽던 마음이 꺾이고 또 깎이게 됩니다. 마음에 가득했던 원망과 불평들이 거두어 지게 됩니다.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게 됩니다. 내 마음의 높이를 1cm라도 낮추면 주께서 열 걸음으로 달려오십니다. 내 마음의 방향을 1도라도 주님께 틀면 주님은 두팔을 벌리며 내게 다가오십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하십니다. 회개하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주께로 돌이키는 자에게 복이 있습니다.

세례받으러 나아온 무리에게 요한은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7-20)

7절을 봅시다. 요한이 요단강에서 이같이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자, 많은 무리가 세례를 받으러 그에게 나아 왔습니다. 그런데 요한은 그 나오는 무리에게 말합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독사의 자식들아하는 것은 아주 심한 욕입니다. 세례를 받으러 오면 크게 환영하고 기뻐해야 하는데 오히려 욕을 퍼붓고 있습니다. 왜 그럽니까? 지금 너도나도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도 받겠다고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있을지도 모를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겠다는 것입니다(7). 마음으로 돌이키는 것 없이 보험용으로 받아 두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8). 이로 볼 때 회개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고 뉘우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에 합당한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실제 삶의 변화로까지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은 골짜기를 메우고 산을 깎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당히 회개하고 넘어가려 합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니 우리는 이미 선택받은 자들이고, 은혜를 받은 자라고 생각합니다(8). 그러나 하나님은 돌들로도 얼마든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실 수 있습니다(8). 그러므로 헛된 자만심을 버리고 진실되게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9절을 봅시다.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언제라도 임할 수 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 곧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적당히 넘어가려 하지 말고 미루지 말고 지금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맺어야 할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무엇입니까? 10절을 봅시다. 무리가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요한은 그들에게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하라고 합니다(11). 또 세리들이 세례를 받으러 와서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고 묻습니다(12). 요한은 그들에게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했습니다(13). 또 군인들에게는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고 말합니다(14)

이로 볼 때 회개의 열매라고 해서 뭐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상식선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까이에 있는 이웃에게 실제 피해를 주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볼 점은 하나같이 다 물질적인 것, 경제적인 것과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회개라는 것은 결국 욕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탐심, 내 것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것을 내려놓을 때 진정한 회개가 이뤄집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되고, 하나님의 구원을 보게 됩니다.

얼마 전 서울에서 내려온 한 형제가 제 방에 들어와서 제게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메시지를 준비한다고 심각해서 그를 반갑게 맞아주지 못했습니다. 또 이번에 제가 장막에서 2주 정도 지내게 되면서 장막 한 형제님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는데, 이제까지 제가 그 형제가 실제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때, 정작 함께 해주어야 할 그 때는 함께 해주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메시지 준비한답시고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싶습니다. 여전히 제 관심과 생각은 저 자신의 안위와 생존 자체에 많이 치우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제게 오늘 말씀이 분명한 방향이 됩니다. 제가 실제에서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그들을 돌아보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께서 저의 닫힌 눈과 귀를 열어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15절을 봅시다.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삶의 문제에서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요한의 메시지는 너무나도 강력했습니다.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로 인해 모든 사람들은 요한이 혹 그리스도가 아닌가 심중에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요한은 이들에게 자신과 비교하여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자기보다 더 능력 많으신 분이 오시는데, 그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 말합니다(16). 물세례만으로는 죄사함을 받을 수 없고, 새롭게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나오는 자에게 예수님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십니다. 성령은 변하여 새사람이 되게 하시고, 불은 그 사람의 죄를 태우며 죄를 이길 힘까지 줍니다. 회개한 사람은 알곡이 되어 주께서 그를 주의 곳간에 들이십니다(17). 그러나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그 속이 텅 빈 쭉정이 같은 자들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주께서 다 모아서 꺼지지 않은 불에 태우십니다(17).

요한은 또 그 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습니다(18). 또 분봉왕 헤롯이 자기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하는 것은 악한 일이라고 책망하였습니다(19). 헤롯은 이런 요한을 옥에 가두는 악을 더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의 목을 베었습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음으로 결국은 벌레에 먹혀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우리가 주의 길을 준비하려면 무엇을 해야합니까? 세례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하였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지금 여기서 들린 바 말씀을 따라 회개하고, 탐심을 버림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삶에서 돌이켜, 다른 사람을 실제에서 돌아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실제 삶이 속이 꽉 찬 알곡이 되고, 주의 구원을 보는 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아멘!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누가복음 3:8)

 

2022년 누가복음 1강 메시지 03010-320 정여호수아.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