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INJE UBF

메시지

조회 수 2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2024년 마가복음 7강                                                                                                                                         정여호수아

마가복음 4:1-34

 

 

하나님 나라의 비밀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마가복음 4:11)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들을 귀 있는 자(4:1-13, 21-25)

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수 많은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셨습니다.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피하기 위해 미리 배 위로 오르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배를 강단 삼아 바닷가 육지에 있는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그 가르치는 방식이 이제까지 해 오셨던 방식과는 좀 달랐습니다.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2). 어떤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까?

4-8절을 봅시다.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우리는 이 비유를 씨 뿌리는 자의 비유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씨를 뿌리는 사람이나, 씨는 같지만 그 씨가 떨어진 밭에 따라서 결과가 전혀 달라졌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비유는 씨가 떨어진 밭의 비유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찌되었든 예수님은 이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고 말씀을 마치셨습니다(9). 이 말씀을 듣고 잔뜩 기대하고 몰려왔던 사람들이 갑자기 웬 농사이야기를 하시는가? 하며 떠나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0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홀로 계실 때에 함께한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더불어 그 비유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뜻밖에도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11) ‘하나님 나라는 비밀입니다. 아무에게나 알려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비밀이 너희에게는 주어졌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너희가 누구입니까? ‘열두 제자들을 포함해서 예수님과 함께 한 자들입니다. ‘비유의 말씀을 들었으나 그 의미를 알지 못해 알고자 예수님께 따로 나아와서 물은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감추어졌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주어집니다. 이로볼 때 들을 귀 있는 자는 예수께서 하신 비유의 말씀을 한 번에 다 알아듣고 이해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를 알고자 적극적으로 나아와 묻는 사람입니다. 묻는 그들이 감추어진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진정 복된 자들입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숨기지 않고 속 시원하게 다 알려 주십니다.

반면 외인은 누구입니까? 그 반대이겠지요. 말씀을 들어도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지 않고 질문도 없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자기가 듣기 원하는 말만 듣고자 할뿐, 그렇지 않은 것 같으면 더 이상 소원을 가지고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말씀이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과 자세에 따라 너희외인으로 갈립니다. 같은 말씀을 들음에도 누구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비밀을 알고 깨닫고 누리지만, 누구는 단 하나도 깨닫지 못합니다. 돌이켜 죄사함을 받지 못합니다(12). 그런데 12절 말씀을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심이 숨기고 감추려는 데 있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책상 아래에 두려는 함입니까? 등경 위에 두려함입니까? 당연히 등경위에 두려함입니다(21).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지금 모든 말씀을 비유로 하심도 그 목적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숨기고 감추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더 확실히 나타내고 밝히 드러내기 위함입니다(22). 그러므로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야 합니다(24). 자기가 들은 말씀이 무슨 뜻인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어떻게 됩니까?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게 된다고 합니다(24). 여기서 헤아리는 것은 됫박에 들어 있는 곡실 한 알 한 알을 일일이 다 세어보는 것을 말합니다. 언제 일일이 하나 하나 그것을 다 세어 보고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헤아리는 사람은 헤아리는 만큼 그 말씀에 담겨져 있는 뜻을 깨닫게 됩니다. 그 뜻을 깨닫는 것에 더하여 더 많을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반대로 헤아림이 없는 자는 이전에 깨달았던 말씀까지도 다 빼앗깁니다(25). 현상유지는 커녕 마이너스가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도 빈익빈 부익부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 중에 마가복음을 여러 번 공부한 분들이 많습니다. 더구나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공관복음서를 공부할 때마다 나오는 말씀이라서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말씀을 대하기 쉽습니다. 이번에도 좋은 밭이 되라는 것이지 뭐하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충 알고 넘어가는 것은 실제로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죄송하지만 그 다 안다고 하면서 별로 생각하지 않고 지나가는 그 말씀 안에 더 깊고 심오한, 무엇보다 우리를 구원하고 우리를 새롭게 하고 감동을 주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경외함으로 듣고자 하는 겸손한 자세를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14-20)

14절을 봅시다. 예수님은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씨가 곧 말씀이요, 그 말씀의 씨가 뿌려지는 땅은 각 사람의 마음 밭입니다. 이로 볼 때 하나님 나라는 말씀이 뿌려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는 말씀으로 말미암는 역사요, 말씀이 뿌려진 그 사람의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또한 이 말씀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 말씀이 어떤 사람의 마음밭에 뿌려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15절을 봅시다. 먼저 길 가입니다. 길가의 특징은 딱딱하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정답이 뻔한 질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답하지 않는 종교지도자들을 보시며 마음이 완악하다고 하셨는데(3:5), 마음이 완악한상태가 바로 길 가와 같은 것입니다. 이들은 그 마음이 딱딱하기 때문에 말씀을 다 튕겨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은 즉시 배고픈 사탄의 먹이가 됩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돈을 빼앗지 않습니다. 건강을 빼앗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습니다. 그러므로 진짜 중요한 싸움은 내가 들은 말씀을 지키느냐 빼앗기느냐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돌밭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들을 때 즉시 기쁨으로 받습니다(16). 그러나 그들의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넘어지고야 맙니다. 이는 말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17). 앞에서 예수님을 열렬하게 환영하는 큰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처음에 말씀을 잘 받아들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어려움이 생기자 결국은 자기 갈 길을 갔습니다. 이들은 말씀을 깨닫고 돌이키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말씀을 피상적으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너무도 얇습니다. 그래서 환난이나 박해가 왔을 때 쉽게 부정적이고 어두운 생각에 사로잡혀 말씀을 그냥 놔 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같은 환난이나 박해가 말씀으로 인하여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말씀은 내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가치와 생활 방식과 반드시 충돌하거나 갈등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충돌과 갈등속에서 말씀이 뿌리를 내립니다. 실제로 말씀을 붙들고 어려움을 견디면서 우리는 말씀의 힘을 체험합니다. 말씀을 피상적으로, 지식적으로 알던 데서 심령으로 깨닫고 이해하게 됩니다(119:71). 그런 점에서 환난과 박해는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람으로 말씀에 뿌리를 내리게 하기 위한 하나의 필수 과정입니다. 마치 씨를 발아하게 하고 뿌리를 내리게 하는 햇빛과 같은 것입니다.

세번째로, ‘가시떨기입니다. 이들 역시 말씀을 듣는 사람들입니다. 나름 뿌리도 내리고 또 잎을 내고 줄기도 내며, 어느 정도 자라기도 자랍니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의 가시가 같이 자랍니다. 이런 가시들이 말씀을 막고 질식시켜 끝내 결실하지 못합니다. 앞에서 환난이나 박해가 외부적인 공격이라면 이 세 가지는 내부적인 공격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요즘은 특히나 물질을 추구하는 시대입니다. 돈을 더 벌고 싶은 욕심이 사회 전반적으로 퍼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어도 이런 세상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욕심의 가시가 쥐도 새도 모르게 마음속에 파고 들어와 함께 자라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될 그 때에 넘어질까 조심하고, 실제에서 말씀앞에서 자신을 부지런히 살피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20절을 봅시다. 마지막으로 좋은 땅입니다. 그는 말씀을 듣고, 받아, 하나는 삼십 배, 하나는 육십 배, 하나는 백 배로 결실합니다. 앞에서 세 부류의 사람들은 말씀을 듣지만 내외적인 방해가 오면 중단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가운데서도 말씀을 듣되 계속 경청하여 듣습니다. 들은 말씀을 받아들입니다. 여기서 받는다는 말은 자기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고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회개입니다. 듣고 받아는 둘다 현재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곧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해서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좋은 땅으로서 30, 60, 100배로 결실을 합니다. 최소가 30배로 결실합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열매의 문제는 환경 문제가 아닙니다. 시대 문제도 아닙니다. 집안 내력의 문제도 아닙니다. 양의 문제도 아닙니다. 심지어 나의 내면 문제도 아닙니다. 이런 것의 문제가 어떠하든 말씀을 단순히 듣고 받아들이는 자세, 이를 행하여 실천하는 자세가 있다면 그는 30, 60, 100배의 열매를 거둡니다.

요즘은 말씀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느 교회에 가서 말씀을 들을까 고민합니다. 유투브에는 유명 목사님 설교가 넘쳐납니다. 우리 모임도 말씀이 넘치는 모임입니다. 말씀에 깊이가 있고 또 어떤 모임보다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합니다. 이렇게 말씀이 넘치는데도 실제로는 결실이 없으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말씀이 이에 대해 대답해 줍니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말씀을 듣고 받지않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귀로만 듣는 귀 신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실제에서 말씀을 경외함으로 듣고 받는 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 들려주시는 말씀을 붙들고 이를 받아들여 행하므로 3060100배 결실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받아 결실하는 좋은 땅이 되려면 정말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26-29)

다같이 26절을 봅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다고 하십니다(26).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그리되는지는 모르는데 계속 자랍니다(27). 그렇게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 납니다(28). 그리고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댑니다.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29).

우리는 말씀을 몇 번 공부하면 즉시 쑥쑥 성장하고 또 금방 인생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기를 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열매가 나타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당장 보기에는 좀처럼 잘 안 자라는 것 같습니다. 자라고 있는지 조차도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심겨지기만 하면 때가 되어 반드시 성장하고 열매를 맺습니다. 다만 결실하기까지는 여러 과정이 있고 또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 우리는 말씀을 전할 때 자신의 부족함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 세상이 이렇게 영적으로 무관심하고 세속적인데 과연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사람의 수고와 반응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을 믿을 때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말씀을 계속 뿌릴 수 있습니다. 당장 열매가 맺히지 않더라도 오래참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이같이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인내함으로 말씀을 뿌릴 때, 그 말씀은 어디까지 성장할까요?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30-35)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내십니까(30)? 31절을 봅시다.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하십니다. 겨자씨는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습니다. 볼펜 점하나 찍는 것과 같을 정도로 정말 작습니다. 그러나 심긴 후에는 어떻게 됩니까? 32절을 한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모든 풀보다도 커지며 큰 가지를 냅니다.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정도로 커집니다. 여기서 공중의 새는 여러 민족을 가리킵니다(31:6, 4:11,12,21). 또 마땅히 안식처가 없어 공중에서 이리저리 방황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는 인생에서 비빌 언덕이 없고, 여러 모양으로 많이 아프고,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말씀 한마디가 심겨진 그 사람은 장차 이런 사람들의 영혼에 안식과 쉼을 주는 영향력있는 존재가 됩니다. 이것이 말씀을 듣고 받는 그 사람이 실제에서 30, 60, 100배로 결실하는 바 그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내용일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은 아주 작은 역사에서 시작합니다. 나 한 사람이 말씀 한마디를 듣고 받고, 또 나 한 사람이 말씀의 능력을 믿고 한마디 말씀의 씨를 뿌리는 역사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말씀 한마디가 내 안에 심겨지고 자라나는 것이 너무나 작고 미미해 보입니다. 내가 말씀 한마디 듣고 받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한가 싶습니다. 일대일로 양을 섬긴다고 무슨 역사가 있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심겨진 말씀 한마디가, 또 내가 뿌린 그 말씀 한마디가 언젠가는 자라고 자라서 큰 나무가 됩니다,. 그 그늘에서 공중에서 쉼이 없는 새들이 쉼과 안식을 얻기까지 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를 증거합니다. 창세기를 보면 그 역사는 하나님은 자식 하나없이 소망없이 죽어가던 아브라함 한 사람이 말씀 한마디를 듣고 받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1,2) 그의 시작과 출발은 정말 겨자씨 한 알과 같은 작고 미미한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한 사람에게 심어진 그 말씀에서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이삭이 나더니 400년 후, 그의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루고 놀라운 출애굽 역사로 이어졌습니다. 많은 이방인들과 수많은 잡족들도 이때 같이 구원을 받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아브라함은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는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이 확장되어가는 모습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비록 소수일지라도 말씀을 듣고 받는 제자들이 공중의 새들을 먹일 큰 나무같이 될 소망가운데 계속 말씀을 심고 계십니다예수님의 이 믿음과 소망대로   사도행전을 보면  그들은 실제로 사람낚는 어부가 되어 이스라엘뿐 뿐아니라 온 세상의 만민을 구원하는 역사에 귀하게 쓰임을 받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였고 결실하는 역사는 미미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는 말씀 역사이며, 결실은 말씀을 듣고 받는 그 마음의 자세에 달려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이 뿌려지고 심어지는 곳에서는 반드시 결실하는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겨자씨 역사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심어진 그 말씀으로 인해 우리안에서 하나님 나라는 지금도 쑥쑥 성장하고 있습니다. 공중의 새가 깃들일 정도로 큰 나무가 되기위해 지금도 땅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성장을 위한 세포 분열을 하고 있습니다. 이를 확신할 때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확신 가운데 말씀 역사를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변함 없이 말씀을 듣고 받고 헤아리고 뿌리고 심는 일에 힘쓰기를 기도합니다.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마가복음 4:11)

 

2024년 마가복음 7강 메시지 0401-0434 정여호수아.hwpx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2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9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newfile 정여호수아 2024.05.12 2
31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8강 메시지(천모세) file 정여호수아 2024.05.05 20
30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7강 메시지(양산 센터 천모세) file 이제현 2024.05.01 15
»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7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4.29 27
28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6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4.24 24
27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6강 메시지(양산 센터 천모세) file 이제현 2024.04.21 22
26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5강 메시지(김아브라함) file 정여호수아 2024.04.14 16
25 마가복음 2024년 부활절 특강 (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3.31 25
24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4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3.24 40
23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3강 메시지(천모세) file 정여호수아 2024.03.18 30
22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2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3.10 27
21 마가복음 2024년 마가복음 1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3.03 35
20 마가복음 2024년 신년 2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24.01.07 35
19 마가복음 2020년 봄학기 개강특강(천모세) file 정여호수아 2020.03.15 78
18 마가복음 2020년 신년 1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9.12.29 73
17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23강 메시지(정여호수아) file 정여호수아 2018.09.16 210
16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22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8.09.15 192
15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21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8.09.08 179
14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20강 메시지(정여호수아) 정여호수아 2018.08.23 135
13 마가복음 2018년 마가복음 15강 메시지 file JohnKim 2018.07.05 371
Board Pagination Prev 1 ... 2 Next
/ 2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