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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020.11.22 12:03

2020년 마태복음 34강 메시지 (천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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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34강 메시지 천모세

마태복음 22:15-46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태복음 22:37)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서 말씀대로 산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못하고 예수님을 끊임없이 시험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먼저 세금도 내기 싫고 헌금도 하기 싫은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15-22)

15절을 봅시다. 바리새인들은 청함을 받은 자들은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들이 그 택함을 입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하면 택함을 입을 수 있을까 생각하기 보다는, 그 말씀을 하신 예수님의 말에 어떻게 하면 올무를 걸 수 있을까 서로 열심히 상의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주장하고 싶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말씀대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세상과 구별하여 거룩하게 살고자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그들을 세상과 구별된 사람이라 하여 바리새인이라 불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불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은 세상에서 권력을 잡고 향락을 즐기는 헤롯 당원들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치하면서 말을 잘하는 헤롯 당원들과 힘을 합쳐 예수님을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말을 잘하는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냈습니다(16).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16) 일단 인정하고 칭찬을 하였습니다. 누구로부터든지 인정받고 칭찬을 들을 때는 조심하여야 합니다. 다음 말을 들어 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17).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한다면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을 매국노로 몰아갈 것이고, 옳지 아니하다 하면 로마의 반역자로 몰아가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말을 하면서 속으로 완벽하다. 완벽해라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18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속을 아십니다. 그 속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생각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아십니다. 그들은 겉과 속이 달랐습니다. 겉으로는 세금 문제를 들고 나오지만, 속으로는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함을 아셨습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자는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안타깝게 여기시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그들이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습니다(19). 예수께서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물으셨습니다(20). 가이사의 것이라 대답하는 그들에게 예수께서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하십니다(21).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여 세금이 면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받고 누리는 대로 로마 정부에게 바칠 것은 바치라고 합니다. 저도 정부에 대해서 비난하는 말들을 하지만 국가에서 지원하는 자녀들 양육비와 재난 지원비를 받아서 잘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합니다. 신명기 2612절에서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하셨습니다. 국가에 내는 세금은 세금대로 내고 하나님께 십일조도 바쳐야 합니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나라가 돌아가지 않고 십일조를 드리지 않으면 교회가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망해가게 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맡은 레위인들을 먹이지 않고 쫓아내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역대하 13:9-12).

우리가 국가에 세금은 세금대로 내고, 또 교회에는 교회대로 헌금을 하다보면 이중과세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국가로부터도, 교회로부터도 돈은 적게 내고 혜택은 많이 받고 싶어 합니다. 또 돈은 내가 벌었으니 내 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돈은 한국은행 총재 것입니다. 한국은행은 우리나라 정부기관입니다. 세금을 내야 합니다. 제가 받을 때에는 감사함으로 받았지만 이제 내 놓으려니까 내 것이라고 주장하며 아까워하는 자신을 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누구의 것으로 아는지가 확실하면 아깝지가 않습니다.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갔습니다(22). 그들은 예수님을 올무에 빠뜨리려고 왔지만 도리어 가르침에 놀라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의 올무에 빠지는 것은 자신의 욕심에 흔들리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리에 따라 살고자 할 때에 올무에 빠지지 않고 도리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입니다.

이제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23-3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었습니다(23). 사두개인들은 다윗을 도운 레위인 제사장 사독의 후예라 스스로를 칭하는 제사장들로 예루살렘의 귀족이었습니다. 성전을 관리하고 정치 지도자들과 협조하여 부와 권세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선생님이여 모세가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하며(24),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으면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는데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물었습니다(25-27).

이에 예수께서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다 하십니다(28).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리라 하십니다(30).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십니다(31,32). 이는 하나님께서 광야에 있는 모세를 이스라엘을 출애굽하기 위하여 쓰시고자 부르실 때에 주신 말씀입니다. 모세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죽고 나서 사백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후대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현재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십니다(32).

사두개인들은 사람의 몸이 죽은 후에 부활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예수께 물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께서 부활이란 죽고 나서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의 문제라고 하십니다. 과거는 지나간 현재이고, 미래는 다가올 현재입니다.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과거가 있었고, 미래도 결정될 것입니다. 지금 내가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모세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그때 거기서 믿음으로 출애굽 역사에 쓰임 받았습니다. 유다가 망해가는 그 때 하박국은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께서 그때 거기서 일하심을 믿고 그때 거기서 힘을 내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 여기서 믿는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무리가 듣고 그 가르침에 놀랐습니다(33).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하지만 실제에서는 부활과는 관계없는 삶을 살아가기 쉬운 것 같습니다. 저는 응급실 근무를 하면서 매일 매일 저로 인해서 무슨 문제가 생기지나 않을까 노심초사 합니다. 내 자신이 이를 감당할 만큼 성숙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 발견이 될 때에 너무도 괴롭습니다. 말씀과 실제 삶이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관계성이 끊어지고, 죽은 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사는 사람이 살아 있는 삶을 삽니다.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다시 예수께 나왔습니다(3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34-40)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물었습니다(35,36). 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예수께 나아와 질문하는 열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목적은 말씀을 지키는 것에 있지 않고 예수를 시험하여 넘어지게 하는 일에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라 하십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 하십니다(37-40). 예수님의 말씀의 요지는 하나님은 너의 하나님이시며,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면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기도할 때에 내가 저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하나이다 하였습니다(누가복음 18:11). 그들은 창녀와 세리와 같은 자들은 이웃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끼리만 어울려 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며 세리와 창기들을 영접하셨습니다. 죄인들도 이웃으로 보십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그들은 실상 하나님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보다 자기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신앙생활을 하고, 높은 자리에 앉아 인사받기를 좋아하였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진정한 친구가 있을까요?

올해 우리는 인제와 양산 캠퍼스 가운데 친구를 삼자는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친구가 없습니다. 그 동안 내 생존을 위해서 급급한 삶을 살아 왔습니다. 무엇보다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내 것을 내 놓기가 싫었습니다. 내 시간, 물질과 자존심을 내어놓기보다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제가 이제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친구를 사귀고자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싶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까? 그동안 이렇게 살려고 얼마나 소감도 많이 쓰고 노력을 해왔습니까? 우리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같이 되지 않고, 실제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41-46)

지금까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번갈아 질문을 하였는데 이제는 예수께서 질문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물으셨습니다. 그들이 다윗의 자손이라 대답하였습니다(41,42). 예수께서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냐 하시며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셨습니다(43-45).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자신이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이심을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한 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 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었습니다(46).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믿지도 않고 인정도 하지 않는 자들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처럼 자꾸만 말씀에 대한 순종은 하지 않고 끊임없이 헛소리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로 믿으면 세금도 내고, 헌금도 하며, 지금 여기서 나의 하나님을 믿고 살고 내 몸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때로는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손해 보는 삶인 것처럼 여겨지고 때로는 억울하게 느껴질 그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내어놓기까지 우리를 살리신 사랑을 기억하며 가까이에 있는 가족을 사랑하고 동료들을 사랑하고 이를 넘어서서 처음 보는 형제자매들에게도 이 사랑을 증거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마태복음 22:37)

 

 

2020 마태복음 34강 메시지 2215-2246 천모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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