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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33강 정여호수아

마태복음 22:1-14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복음 22:14)

우리는 지금 예수님의 청함을 받고 말씀을 듣고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택함을 입은 자가 됩니까?

예수께서 먼저 천국은 무엇과 같다 하십니까?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1-4)

1절을 봅시다. 21장에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께 무슨 권위로 이 일을 하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두 아들 비유와 포도원 주인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듣고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이를 듣고 그들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알았지만, 회개하기보다 도리어 예수님을 잡고자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다시 비유로 대답해 주십니다. 교만하고 완악한 자들일지라도 예수님은 포기치 않으십니다. 예수님은 또 다시 그들을 말씀으로 도우십니다. 어찌하든 그들을 돕고자 하시는 예수님에게서 사람을 향한 무한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다고 하십니다(2). 이 비유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포인트는 혼인 잔치가 아니라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입니다. 저는 여기서 자기 아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저의 아버지는 제가 결혼할 때 당신께서 특별히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음을 마음 아파하셨고, 그것을 아직까지도 미안해하십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의 혼인잔치는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게 해주고 싶은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잔치를 위해 얼마나 많이 준비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기쁨을 나누기를 원하였을까요. 이에 임금은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고 하였습니다(3). 황태자의 혼인 잔치에 초청을 받은 그들은 임금으로부터 택함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청함을 받은 사람들은 잔치에 오기 싫어하였습니다(3). 그럼에도 임금은 앞에 보낸 종들이 혹 무슨 실수를 했을까 하여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정중히 말했습니다.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4). 이번에도 그들이 어떻게 하였습니까? 5절을 봅시다. 돌아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갔습니다. 그들은 황태자의 혼인잔치보다 자기 밭가는 일과 자기 사업이 더 중요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였습니다(6). 더 이상 찾아와서 귀찮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그들은 임금과 아들에 대한 존중이 1도 없음을 그들 스스로 확실하게 나타냈습니다. 이런 자들을 어떻게 해야 마땅할까요? 7절을 봅시다.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랐습니다.

이 비유에서 임금은 하나님, 자기 아들은 예수님, 그 청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종들은 선지자들입니다. 이 비유에서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세상 수많은 나라와 민족들 중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은혜를 입어 천국 잔치에 가장 먼저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천국, 곧 하나님 나라에 오기를 싫어하여 거절하였습니다. 다시 기회를 주고, 계속 참고 기다렸지만 끝내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특별한 지위를 상실하고, 그 거절한 것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치를 것입니다. 엄중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이들로 인해 혼인잔치가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정도 되면 잔치고 뭐고 다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임금은 어떻게 했습니까?

네 거리 길에 가서 청하여 오라(8-10)

8,9절을 봅시다. 임금은 종들에게 혼인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 하였습니다. 임금은 혼인 잔치를 취소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뒤로 미루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초청대상자를 바꾸고 네거리로 나가서 만나는 대로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명하였습니다. 네거리 길에서 만나는 자들은 할 일 없어 서성이는 자들, 질병이나 가난으로 구걸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 중에는 더러 불량배들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임금은 아무 자격을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 초청해서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만큼 풍성한 혼인 잔치를 빈자리로 남겨두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에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왔습니다(10). 선한 자들이야 괜찮지만, 악한 자들을 초청하면 잔치의 품격을 떨어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임금은 그것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누구든지 그 초청에 응하기만 하면 잔치의 풍성함을 누릴 수 있게 하였습니다. 비록 세리와 창녀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모르고 우상을 숭배하는 악한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천국으로의 초청에 응하기만 하면 천국잔치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같이 모자라고 자격 없는 자에게도 주의 종들을 보내셔서 천국잔치에 불러주신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를 생각하면 언제든 항상 감사합니다.

예수님 말씀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11-14)

11절을 봅시다. 수고한 종들로 인해 혼인잔치는 가득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때가 되자,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혼인잔치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혼인잔치에는 그에 합당한 예복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무슨 생각으로 예복 없이 당당하게 혼인잔치에 참석하고 있는 것일까요? 임금은 혼인 잔치에 참석하는 조건으로 초청된 자들에게 무엇 하나 요구한 것이 없었습니다. 네거리에서 만나는 대로 다 불러 모으라 했고, 악한 사람이나 선한 사람도 가리지도 않았습니다. 축의금을 내라거나, 최소한 선물 하나 정도는 가져오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예복만 입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예복도 자신이 준비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임금이 준비해 준 것을 입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임금의 뜻과 관계없이 기존에 자신이 입고 있던, 자기에게 익숙하고 편한 옷을 그대로 고수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임금이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하고 물었습니다(12). 그러자 그가 아무 말도 못하였습니다. 예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얼마든지 입을 수 있는데도 입지 않았음을 그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13절을 봅시다. 임금이 그 사환들에게 명합니다.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많은 사람들이 천국은 초청에 응하기만 하면 아무나 그냥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볼 때 천국은 초청에 응하는 것만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예복을 입지 않고 그냥 들어가면 손발이 꽁꽁 묶여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납니다. 들어간 줄 알았는데 쫓겨나서 억울하고, 한번 쫓겨나면 다시는 들어갈 수 없기에 이를 갑니다.

이렇게 원통한 일을 당할 사람은 많을까요? 적을까요? 다같이 14절을 봅시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청함을 받고도 쫓겨나서 원통한 일 당할 사람이 많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먼저 초청 받은 유대인들은 그들의 관심이 천국이 아니라 온통 자신의 일에 쏠려 있었습니다. 반면 이방인들은 초청에 응하여 잔치 자리에는 쉽게 들어왔지만 예복을 무시했습니다. 이처럼 임금의 초청을 거절하거나 예복을 무시하는 자들이 많기 때문에 택함을 입은 자는 적습니다.

그러니까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예복이 무엇인지 깨닫고, 어떻게 입을 수 있는지 배워야 합니다. 과연 예복은 무엇이며, 어떻게 입을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볼 때 예복은 임금 되신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해 주신 옷입니다. 이사야 611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곧 이 예복은 하나님이 입혀 주시는 구원의 옷이며 공의의 옷입니다. 또 바울 사도는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하였습니다(로마서 13:12-14). 이로 볼 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주신 예복은 구원의 옷, 공의의 옷, 빛의 갑옷입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둠의 일을 벗어야 합니다. 곧 정욕을 위해 도모하는 모든 육신의 일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방탕, 술 취함, 음란, 호색, 다툼, 시기와 같은 어둠의 일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구원의 옷, 공의의 옷, 빛의 갑옷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주십니다. 모든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시며, 의롭지 않은 나를 의롭다 하십니다. 우리로 청함 받은 자로 끝나지 아니하고 택함을 입은 자가 되게 하십니다.

저는 최근에 여러 일들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면서, 제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예복을 입고 있지 않은 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말씀대로 한다면서 실제로는 계속 자기 의를 내세우고, 제게 익숙하고 편한 것들을 고집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자님들이 아무리 조언하고 깨우쳐 주셔도 그때뿐이지 실제로는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당장 욕 들어 먹는 것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번 하는 시늉만 했던 것 같습니다. 또 다섯 살인 제 아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보고 들으려 하기 보다는 제 뜻대로 주관하고자 하고 다그치기를 무한 반복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제 언성이 조금만 높아지는 것 같으면 어린 제 아들은 일단 겁을 먹고 갑자기 울어버리거나 눈을 감고 귀를 닫아버립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저의 정과 욕심대로 행할 때 그것이 제 주변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고 있는지 이제야 그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간 내 마음의 밑바닥이 드러나게 하시고, 제 실제 모습에 눈뜨게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누구 말도 듣지 않던 완악한 죄인이라도 주께서 포기치 아니하시고 끊임없이 말씀을 들려주시고, 죄에서 돌이킬 수 있는 길을 여시고 은혜 주심에 감사합니다. 제가 지각없는 데서 깨어나 저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매일의 삶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삶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제는 자기중심적인 것을 극복하고, 눈을 떠서 주변 사람들을 보고 또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열고 듣는 데 집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가 적다고 하셨습니다. 택함을 입은 사람 즉 천국 잔치를 누리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택함을 입은 자. 곧 자신이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한 사람입니다. 누가 택함을 입을 수 있습니까? 천국 잔치의 초청을 기뻐하며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따라 자기 죄악의 옷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사람입니다. 다음 주 우리는 가을 수양회를 갖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주님의 초청에 기쁨으로 응답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구원과 생명과 복을 풍성히 받아 누리고 나누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태복음 22:14)

 

 

2020 마태복음 33강 메시지 2201-2214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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