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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14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마태복음 9:1-17

 

 

나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13)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여러 사람들이 예수께 의문을 표하였습니다. 어떤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시자, ‘신성 모독이 아닌가?’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자, 어떤 바리새인들이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는가?’ 하였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께 나아와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질문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답을 하시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밝히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예수님이 누구시라고 말씀하십니까?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알게 하리라(1-8)

예수께서 배에 오르셔서 가다랴 지방에서 건너가 본 동네 가버나움에 이르셨습니다(1). 2절을 봅시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왔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침상 채 데리고 나온 것을 보면, 마비가 아주 심각한 중풍병자였습니다. 또 예수께서 그를 보고 작은 자야라고 하신 것을 보면 나이도 그렇게 많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젊은 나이에 전신 마비가 되어 하루 종일 누워 지내는 중풍병자, 그리고 이런 그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예수께로 나아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께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나아왔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이에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뜻밖에도 예수님은 안심하라하시고서는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셨습니다. 그동안 예수님은 병자들이 나아오면 그 병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해 주셨고,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떠나가게 하시고, 백부장 하인의 중풍병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은 이제까지와는 아주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그의 병을 낫게 하시기보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중풍 병이 낫는 것보다, 그의 병의 근본 원인이 되는 죄 문제가 해결되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사람의 병을 치료하여 그들로 죽음에 이르는 시간을 늦추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들의 질병과 죽음의 원인이 되는 근본문제, 곧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러 오신 그리스도이십니다(마태복음 1:21)

그런데 이를 들은 어떤 서기관들은 속으로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한다고 생각했습니다(3). 서기관은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당시 유대교의 지도자입니다. 율법에 따르면 사람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성전에 가서 양을 잡거나 소를 잡아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께서 죄 사함을 선포하십니다. 그들이 볼 때 이는 율법도 무시하고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신성모독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4,5절을 봅시다.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둘 다 쉽지 않은 말입니다. 둘 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하시며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하셨습니다(6). 그러자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7). 이렇게 하심으로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8).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빌립보서 2:6).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사람의 아들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인자, The Son of Man이십니다. 죄 없으신 예수께서 죄인 된 사람으로 오신 목적은 사람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예수께 있음을 알고 믿음으로 예수께 나가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선포해 주십니다.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우리가 언제라도 이 예수께 믿음으로 나아가 죄 사함의 은혜를 받고 누리는 것이 믿음의 삶입니다. 또 죄로 인해 고통하고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죄 사함의 권세자이신 예수님을 증거 하는 삶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입니다.

믿음으로 산다지만 저는 지금도 중풍병자처럼 생각은 뻔한 데 손발이 마비되어, 제가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여전히 같은 죄를 반복하고 그러면서 끊임없이 양심의 가책을 받고, 심판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이런 제게 예수께서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말씀을 또 들려주십니다.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알라고 제게 다시 말씀해 주십니다. 제가 어떤 때에라도 안심하고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가 죄 사함을 받고, 저의 모든 죄 짐에서 벗어나 일어나 걸어가는 삶,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으신 예수님은 누구를 부르러 오셨습니까?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9-13)

9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하셨습니다. 그는 동족인 식민지 백성 유대인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유대를 다스리는 로마에 갖다 바치고 나머지는 자신이 가지는 세리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매국노로 취급을 받는 공식적인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나를 따르라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매국노 취급 받는 세리를 제자 삼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아셨습니다. 돈 좀 벌고자 하다가 그만 죄인이 된 그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인생목적이 돈이 아니라, 예수님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마태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그가 일어나 따랐습니다. 그도 돈 좀 벌고 매국노 취급 받고 사는 것이 고통이었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었는데, 예수께서 그의 인생 목적이 되어주시겠다고 하니 은혜였습니다.

10절을 봅시다. 마태는 이 은혜에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하여 식사를 대접하였습니다. 그 자리에 마태의 동료였던 많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을 붙들고 따지듯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11)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12,13) 바리새인들은 세상을 세상 사람들과 같이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성경을 읽고 배우며 세상 사람들과 다른 거룩한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성전에 가서 거룩하게 제사를 드리고, 죄인들과는 같이 밥을 먹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긍휼은 마음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같이 하지 않고, 형식적은 제사를 드린다면 제사는 이미 그 뜻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제사를 드림으로 죄에서 자유를 얻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원하십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예수께서는 매국노 죄인 세리 마태를 부르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긍휼을 실천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죄인 된 사람을 보고 마음을 같이 하는 긍휼은 타고 난 성품이거나,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배우는 데서 옵니다.

과연 제가 실제로 긍휼한 마음을 배울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저 같은 소망 없는 죄인도 긍휼히 여기시고 제자로 불러주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생각할 때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14-17)

14절을 봅시다.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예수님 당시에 신앙생활을 좀 한다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두 번은꼭 금식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금식은 하지 않고 도리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맛있게 같이 식사하였습니다. 나는 금식하는데, 저들은 저렇게 먹다니, 그들은 마음이 많이 불편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그들은 따져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15절을 봅시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고 하십니다. 유대인들의 혼인잔치는 아주 성대했습니다. 보통 일주일씩이나 잔치를 벌였는데 그동안에는 금식 일에도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결혼잔치 하는데, 나는 금식 중이야 한다면 잔치를 망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 있기 때문에 금식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면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16,17절을 봅시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생베 조각은 신축성이 좋아 낡은 옷에 붙이지 않습니다. 그 신축성 때문에 더 찢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새 포도주는 발효가 왕성하고 그 발효하는 힘도 대단합니다. 그래서 낡은 가죽부대에 넣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면 결국 가죽부대는 터져버리고 그 안에 있는 포도주는 쏟아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합니다. 그래야 둘이 다 보전됩니다.

제가 올해로 말씀을 읽고 배운지 15년이 다 되어 갑니다. 그런데 그동안 실제로 무엇을 배웠는가 싶습니다. 사람에 대한 긍휼한 마음도 없고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원하지 않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리새인들처럼 낡은 가죽부대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이런 제게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말씀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말씀이 제 마음에 새롭게 다가옵니다. 제가 배우는 마음을 잃어버린 것을 회개하고, 다시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 예수님을 배우는 새 부대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 매국노 같은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시고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죄를 사하는 권능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죄인도 긍휼로 감당해 주시고 영접해 주시는 긍휼의 목자이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배우고 행하는 사람은 항상 새 부대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배우고 믿어, 내 자신이 죄에서 구원을 받고 생명이 늘 충만하여, 사람을 살리는 주의 일에 쓰임 받는 새 부대의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태복음 9:13)

 

  2020 마태복음 14강 메시지 0901-0917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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