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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3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창세기 2:4-25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세기 2:8)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한 사람을 위해 특별히 에덴동산을 창설하여 주십니다. 에덴이란 기쁨, 행복이란 뜻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기쁨과 행복을 얻기 위해 별일을 다 합니다. 유토피아, 파라다이스, e편한세상, 푸르지오 등 기쁨과 행복과 관련된 이름으로 지어진 아파트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름이 들어간 아파트에서 산다고 해서 행복할까요?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 사람의 참된 행복의 조건이 무엇이며, 또 어떻게 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지 그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천지가 창조될 때의 하늘과 땅의 내력이 어떠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4-6)

다같이 4절을 봅시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의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하나님은 7일 동안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천지 창조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 창조를 중심으로 보다 자세한 역사를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요 사람은 이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에 대해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만 머물러 있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행복과 삶에 지극히 관심을 가지고 사랑의 관계성을 맺고 교제하고자 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셨을 때 땅의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5,6절을 봅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이는 마치 연극의 무대 위에 막이 오르고 주인공이 등장하기를 기다리는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러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의 주인공인 사람을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7)

다같이 7절을 봅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하나님은 흙을 재료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흙으로 지어진 사람의 육체에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셨습니다. 이로서 사람이 생령, 곧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가르쳐 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흙에서 온 존재, 곧 한계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께로 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땅의 흙과 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또 흙덩어리처럼 잘 부서지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사람의 몸이 강한 것 같지만 사실 얼마나 약합니까? 젊은 시절에는 이를 잘 모르지만 나이가 들고, 몸이 좀 아파서 병원 신세도 져보면 정말 사람의 몸이 흙과 같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약한지 우리는 체험할 수 있습니다. 저도 젊은 시절 군대에서 4시간 동안 전투 축구를 해도 힘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1시간 이상 축구를 하면 일주일 내내 힘들어 합니다. 또 비를 맞고 다녀도 감기한번 걸리지 않았는데 요즘은 날씨가 조금만 쌀쌀해지거나 일교차가 커지면 비염증상이 심해져서 골골댑니다. 이처럼 사람은 그 육체가 흙에 불과한 존재이기 때문에 연약합니다. 곧 연약한 우리 사람은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기운으로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만 생명을 얻고 누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연약함과 한계를 인정하고 매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2:22). 우리 각 사람이 흙으로 지어진 나의 연약함을 알고, 무엇보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고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과의 교제에 힘쓰길 기도합니다. 지난 주 형제 장막에서 새벽을 깨워 아침 일용할양식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기로 결단하였는데 매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의 생기를 받아 캠퍼스에서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생기로 생령이 된 사람을 위해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8-14)

다같이 8절을 봅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신 후 황막한 땅에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그 지으신 사람을 위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여 주셨습니다. “에덴이란 기쁨또는 행복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기쁨과 행복에 지극한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마치 아이를 낳은 부모가 아이의 필요를 섬세하게 갖추고 채워주듯이 하나님은 그 지으신 사람의 행복을 위해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 동산을 따로 만들어주셨습니다.

그러면 에덴동산의 구체적인 모습이 어떠하였습니까? 다같이 9절을 봅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에덴에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있었습니다. 에덴은 어디나 잘 가꾸어진 자연휴양림이고 어디서나 공짜로 신선하고 맛있는 과일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곧 에덴에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사람이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영원한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한계가 있다고 한다면 우리의 행복은 한계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먹거리, 볼거리에 대한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이 젊음과 행복을 보다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가입니다. 그래서 젊음을 오래 오래 누리고 유지하고자 몸에 좋다는 것은 고가의 돈이 들더라도 다 사다 먹고, 심지어 보톡스를 맞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에덴은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는 곳입니다. 거울을 보면서 가는 세월을 안타까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늘어가는 흰머리를 보며 또 다시 염색을 해야하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암과 같은 질병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든지 생명나무열매를 먹으며 활기찬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에덴에는 또 무엇이 있었습니까? 다같이 10-14절을 봅시다. 강이 에덴에서부터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있었습니다. 강은 생명의 젖줄입니다. 물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넘칩니다. 이 에덴에서 갈라진 물줄기는 비손, 기혼, 힛데겔, 유브라데 네 개의 강을 이루었습니다. 특히 첫째 강 비손이 흐르는 하윌라 땅에는 순금과 베델리엄과 호마노와 같은 보석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처럼 에덴동산은 사람이 살아가기에 전혀 부족한 것이 없는 지상 낙원이었습니다. 서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고,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질병도 없고, 죽음이 없고, 치열한 생존 경쟁도 없고, 속되고, 가증한 것이 없었습니다. 요즘 우리로 숨쉬기도 힘들게 하는 미세먼지 같은 공해도 없고, 소음도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환경만 좋다고 해서 사람에게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에덴동산에는 또 무엇이 있었습니까?

에덴 동산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15)

 다같이 15절을 봅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하나님은 아담으로 하여금 에덴에서 잘 먹고 놀고 편하게 쉬며 무위도식하도록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에덴 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람이 마냥 먹고 놀고 쉬며 인생을 즐기는 것이 행복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저주일 뿐입니다. 정말 아무 할 일도 없이 계속 놀고먹어 보십시오. 어떻게 될까요? 날마다 풍요로운 에덴에서 과일을 따먹으며 오늘은 비손 강에 가서 순금으로 물수제비를 던지고, 내일은 기혼 강에 가서 래프팅하고, 또 다음날은 힛데겔 강에 가서 낚시를 하고, 그 다음날은 유브라데 강에 가서 수영을 하고 그러다가 배가 고파서 바나나 나무에 올라가 바나나를 까먹고 그러다가 싫증나고 피곤하여 지치면 낮잠을 자고.. 이런 삶이 무한 반복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노는 것도 하루나 이틀이지 계속 놀고먹으면 따분하고 지겨워서 살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할 일없이 집에서 빈둥대는 백수가 제일 힘들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에게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는 사명을 주시고 이곳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며 일하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에 사람의 행복이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형제는 이번 겨울 방학동안 할 일이 없어서 삶이 무료하고 재미가 없었는데 봄 학기가 시작되고 모처럼만에 할 일이 생겨서 힘이 나고 마음에서 생기가 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할 일이 있다는 것만큼 정말 행복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사명이 있고 이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사는 데에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있음을 알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귀하여 여기고 적극적으로 감당하는 복된 길로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같이 에덴을 경작하며 지키는 사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또 무엇을 주셨습니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16,17)

다같이 16,17절을 봅시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를 임의로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주셨습니다.

군대에 가면 식단에 따라 식사가 나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먹기 싫은 것도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합니다. 반대로 먹고 싶은 것이라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없다는 것은 괴로운 것입니다. 또 먹기 싫은 것을 억지로 먹는 것도 괴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담에게 식단을 짜주지 않으셨습니다. 아침에는 사과, 점심에는 오렌지, 저녁에는 바나나를 먹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담이 무엇을 먹든 그것은 아담의 자유였습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사람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람에게 자유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지켜야 할 계명도 주셨습니다. 각종 나무의 실과는 다 먹어도 좋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유를 주실려면 다 주시지 왜 굳이 이런 계명을 주셔서 사람을 구속하고 제한하려 하시는가 싶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자유를 구속하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으로 자유를 맘껏 제대로 누리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사랑입니다. 어떤 점에서 그러합니까?

어떤 한 사람에게 자동차가 생겼습니다. 그는 자동차로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언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 자유를 맘껏 누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교통법규를 지켜야 합니다. 내 자유다 하면서 신호를 위반하여 달리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고가 나서 크게 다치거나 죽을 것입니다. 사람이 자유를 누릴려면 먼저 질서를 지켜야 합니다. 이 질서 안에 있을 때에만 자유가 진정 자유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를 임의로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주시면서 동시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곧 하나님과 사람간의 질서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선악간의 판단은 하나님께 맡김으로 사람이 이 질서 안에서 자유를 맘껏 누리며 진정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이 계명을 주시면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사람이 아예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큰 콘크리트 같은 것으로 막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원천 봉쇄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이 계명을 지킬 수도, 어길 수 있는 자유도 주셨습니다. 그 주신 자유로 스스로 선택하게 하셨습니다. 계명을 어겼을 때 그것에 따르는 책임을 사람이 스스로 지도록 하셨습니다. 피조물에 지나지 않은 사람에게 이 같은 선택의 자유를 주셨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사람에게 이 같은 자유라는 특별히 은혜를 주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사람이 그저 로봇처럼 시키는 대로만 하는 존재가 되길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기계적인 순종이 아니라 자발적인 의지로, 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제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따르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한 인격체로서 존중하시고 온전한 교제와 사랑을 누리고 나누기를 원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각 사람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그 주신 계명 안에 담긴 깊은 사랑을 알고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로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의 말씀을 지켜 온전한 생명을 얻고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사람을 위해서 또 무엇을 하셨습니까?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18-25)

다같이 18절을 봅시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실 때 보시기에 심히 좋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이 사람을 보실 때 좋지 않을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위해 돕는 배필을 짓고자 계획하셨습니다. 그때 아담은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19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이를 보고 아담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지혜와 능력으로 각 생물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 특성에 맞게 알맞은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목이 긴 짐승에게는 기린’, 코에 뿔이 있는 짐승에게는 코뿔소’, 입이 큰 짐승에게는 하마’, 먹는 것을 보면 쉬지 않고 먹어대는 짐승에게는 돼지등등 이렇게 아담이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아담은 부지런히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정작 자기의 돕는 배필을 찾지 못했습니다. 왜 찾지 못했을까요? 동물들 중에는 아담을 도울만한 배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은 아담의 돕는 배필이 될 수 없었습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애완동물을 자식처럼, 애인처럼 사랑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랑스러운 강아지일지라도 결코 사람을 돕는 배필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다같이 21-22절을 봅시다.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마치 결혼식 때 아버지가 신부의 손을 이끌어 신랑에게 데려오듯, 여자의 손을 이끌어 아담에게 데려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오신 여자를 본 아담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23절을 봅시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중의 뼈요  중의 살이라이를 공동번역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구나좀 더 의역하면, “내 안에 너가 있고, 너 안에 내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여자에게 진한 애정 고백을 한 아담에게 결혼의 의미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4절을 봅시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떠나라”, “합하라”, “이루라고 하십니다. 결혼 전에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책임은 부모를 공경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결혼하면 자기 아내에게 가서 아내와 합하여 아내와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아내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남자는 새로 꾸민 가정의 책임을 갖고 어느 누구보다도 아내와의 관계를 우선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을 이루었을 때 그 모습이 어떠합니까? 25절을 봅시다.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두 사람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 뭐든 다 이야기 하였습니다. 서로 간에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정말 온전한 행복한 가정의 모습입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위해 창설하신 에덴동산의 실제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에덴동산은 말 그대로 행복의 동산이었습니다. 사람의 행복은 정말 어디에 있습니까? 먼저 내가 흙으로 지음 받은 연약한 존재,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그 안에서 사명을 감당하고 있을 때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듯이 우리의 삶과 마음 중심에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삶에 있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계절 봄 학기에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에덴의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창세기 2:8)

 

2019년 창세기 3강 메시지 0204 0225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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