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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창세기 1 강 메시지                                                                                                         정여호수아

창세기 1:1-25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 1:1)

이제 내일이면 개학입니다. 신입생들에게 있어서 대학생활의 첫 시작입니다. 무엇을 하던 처음이 중요합니다. 처음에 기본을 잘 닦아야 그 인생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은 항상 기본으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첫 시작에 관한 성경의 기록인 창세기 말씀을 배우고 공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알아야 그 본질을 깨닫고 삶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번 창세기 말씀을 통해 우리의 신앙과 삶의 기초를 튼튼하게 세우며 더욱 견고히 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첫 시작 곧 태초에 대해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다같이 1절을 봅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성경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태초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태초맨 처음이라는 뜻입니다. ‘공간과 시간이 시작되던 때입니다. 태초 이전에는 공간도 시간도 없었으므로 아무것도 존재할 수가 없었습니다. 태초에는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 한 분만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존재의 기원에 대해서 굉장히 궁금해 합니다. 우주와 생명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모든 학문 분야의 근본 질문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 신비를 풀고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연발생설, 폭발설, 진화론 등 여러 가지 많은 이론들이 나왔지만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단 한 줄로 그 비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것을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것이라고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건물은 우리는 보지 못했지만 누군가가 지은 것입니다. 제가 서있는 이 단상도 누가 만들었는 지는 모르지만 누군가가 만든 것입니다. 세상에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존재하게 한 것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상식으로 압니다. 이 건물을 누가 만드는지 나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건물은 그냥 생겨났다고 이야기한다면 어떨까요? 아무도 이 말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건물을 만든 존재가 있다는 것은 믿으면서도 천지를 창조한 분이 있다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첫 시작에서부터 천지가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 한마디로 태초 문제에 대한 실마리가 명쾌하고 시원하게 풀립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존재하게 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창세기를 쓴 모세도 여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를 보면 그는 하나님께 당신의 이름, 곧 당신의 존재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3:14).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모든 만물은 뭔가에 의해서 존재하지만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십니다. 곧 스스로 존재하시는 이 하나님에 의해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던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만물이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존재하게 되었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무엇을 만든다고 할 때 그 사람이 그것을 만드는 데는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이컵도 누군가가 한번만 쓰고 간편하게 버릴 수 있는 컵의 필요를 느끼고, 여러 고민과 생각 끝에 비용은 저렴하면서도 또 쉽게 가공할 수 있는 종이를 재료로 삼아 이 종이컵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종이컵 하나를 만드는 대도 이같이 만드는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하물며 하나님이 이 세상과 우리 인생을 아무런 목적과 뜻도 없이 창조하셨겠습니까? ‘창조란 단어에는 반드시 계획이 있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지으실 때 완벽한 계획 하에 필연적인 뜻 가운데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는 운명이나 허무, 우연이 없습니다. 이 세상이 우연히 생기고, 나도 우연히 생겨났다고 생각할 때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허무해집니다. 우연히 부모님들이 만나서 나를 안 낳으려고 했는데 어쩌다가 실수하여 우연히 나를 낳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운명의 노예가 되어 깊은 허무주의라는 낭떨어지로 굴러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또 허무주의는 쾌락주의를 낳아 인생을 되는 대로 살게 됩니다. ‘우연과 운명이 우리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은 치명적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우연과 운명의 그늘에서 일평생을 살아갑니다. 왜 사는지 모르지만 존재하기 때문에 그냥 삽니다. 세상에서 낙오는 되지 말아야겠기에 나름 열심히 공부도 하고 일도 합니다. 살기 위해 먹는지 먹기 위해 사는지도 모르고 이것이 원래 인생인가 보다 하며 그냥삽니다. 그 삶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방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필연적인 뜻 가운데서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영접할 때 그 인생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더 이상 허무나 운명에 시달리지 않고 매사에 감사함으로 확신에 찬 인생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어떤 어려운 상황과 형편 가운데 있더라도 여기에도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내게 두신 뜻이 있음을 믿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힘찬 인생을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지혜의 왕 솔로몬은 전도서 121,2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우리가 젊은 청년의 때에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를 기억하고 이 하나님 안에서 내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발견하는 것보다 복된 삶이 없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이번 창세기 말씀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깊이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태초에 창조된 땅의 모습이 어떠하였습니까? 2절을 봅시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혼돈이란 일정한 형태가 없이 거칠고 무질서한 상태를 말합니다. ‘공허란 텅빈 상태로서 생명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흑암은 빛이 전혀 없는 캄캄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처럼 지구는 모양도 없고, 생명도 없고, 빛도 없는 상태에서 무서운 적막만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의 영은 수면위에 운행하고 있었습니다. 각각의 창조물들을 어떤 모양으로, 또 어떤 순서대로 만드실 지, 어떤 목적으로 세우실 것인지 등을 깊이 생각하시고 구체적인 창조역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천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창조하셨습니까? 다같이 3절을 봅시다.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말씀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이로서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가운데 있는 땅에 빛이 비치게 되었습니다. 마치 연극이 시작될 때에 까만 커튼이 걷히고 밝은 조명이 들어와서 제 1막이 시작되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것이 첫째 날 이루어진 창조역사입니다. 둘째 날은 어떠합니까? 하나님은 물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뉘게 하셨습니다(6-8). 셋째 날은 천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아 뭍을 드러나게 하시고 거기에 풀과 채소와 과일 등의 식물이 나게 하셨습니다(9-13). 넷째 날에는 광명체들 곧 해와 달과 별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낮과 밤을 나뉘게 하시고 그것들로 징조와 계절과 날과 해를 이루게 하셨습니다(14-19). 다섯째 날에는 물로 생물을 번성하게 하사 하늘에는 새가, 바다에는 물고기가 번성하게 하셨습니다(20-23). 여섯째 날에는 땅에 사는 짐승과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24-25).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없는 가운데서 어떻게 천지를 창조하셨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라는 말이 7번이나 반복되어 나옵니다(3,6,9,11,14,20,24). 그리고 그 뒤에는 곧 그대로 되니라는 말이 따라 나옵니다(7,9,11,15,24). 곧 하나님은 말씀으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세상에 누가 말 한마디로 볼펜 하나라도 만들어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천하의 물이 한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자 순식간에 물들이 바다로 모여 들고 뭍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이 땅은 씨 맺는 채소를 내라 말씀하시자 이다윗 목자가 죽고 못 사는 땡초가 땡!하고 돋아났습니다.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제가 좋아하는 오렌지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마치 컴퓨터에 명령어를 치면 그 명령대로 프로그램이 돌아가듯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천지가 창조되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 그대로를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활력이 있어 어떤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상태에 있는 존재도 질서와 충만과 빛의 상태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4:12).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새 사람이 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간도 우리에게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빛이 있으라!!”. 우리 각 사람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빛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볼 때 또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첫째 날에는 빛을 창조하시고, 넷째 날에는 해,,별을 창조하셨습니다. 둘째 날에는 궁창과 바다를 창조하시고 다섯째 날에는 새와 물고기를 창조하셨습니다. 셋째 날은 뭍과 채소와 과목을 창조하시고 여섯째 날에는 가축과 짐승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첫째 날부터 셋째 날은 피조물들이 살아 갈 수 있는 배경과 환경을 먼저 만드시고,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에는 그곳에 딱 맞는 구성원들을 하나씩 하나씩 채워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냥 마구잡이식으로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조직과 질서를 따라 창조하셨습니다. 그 만드신 피조물들이 생명을 유지하고 제대로 운행되도록 하기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시고 그 계획을 따라 질서 있게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관찰해 봐도 자연속에서 이 같은 놀라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식물은 태양빛을 받아 광합성을 하여 에너지를 얻고 동물은 그렇게 자란 식물을 먹고 삽니다. 동물의 배설물은 다시 식물의 좋은 영양분이 됩니다. 동물은 산소로 호흡하고 이산화탄소를 내놓습니다.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이고 산소를 내놓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대기권의 산소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됩니다. 달이 지구주위를 공전함으로 바다의 조수간만의 차가 생겨서 바닷물이 고여 썩는 일이 없고 그래서 바다의 물고기들도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도 알고 보면 그 속에 놀라운 창조 질서가 숨겨져 있습니다. 보통 다른 액체는 온도가 영하가 낮아질수록 부피가 작아지고 밀도가 높아집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물은 영상 4°C에서에서 부피가 가장 작고 밀도가 높습니다. 얼음이 물 위에 뜨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날씨가 영하권으로 떨어졌을 때도 물이 위에서부터 얼어서 추위를 막아주기 때문에 물고기는 얼어 죽지 않고 겨울을 안심하고 지낼 수가 있습니다. 태양도 참으로 생각할수록 놀라운 존재입니다. 연구에 의하면 태양은 표면온도를 6000°C로 늘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1,2년도 아니고 수천년동안 누가 연료를 공급해 주는 것도 아닌데 자체적으로 이처럼 높은 열을 계속해서 발산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전기는 끊임없이 막대한 양의 연료를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화력, 수력, 풍력발전소를 짓고 그것도 부족해서 원자력 발전소까지 짓지만 자꾸만 말썽을 부리곤 합니다. 그러나 태양은 이제까지 한 번도 말썽을 부리지도 정전사태가 일으킨 적도 없습니다. 한국전기공사에서는 꼬박꼬박 전기세를 받아가지만 하나님은 태양열세를 한 푼도 받지 않으시고 무료로 그것을 공급해오고 계십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이 만드신 천지 만물을 잘 관찰해보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얼마나 조직적이고 질서있게 창조하셨는지를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천지를 질서 있게 창조하실 뿐 아니라 또한 다양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각기 종류대로라는 말이 열 번이나 반복됩니다. 풀과 씨 맺는 채소도 각기 종류대로(11),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는 모든 물고기도 그 종류대로, 하늘을 나는 새도 그 종류대로(21),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짐승도 종류대로 만드셨습니다(24). 실제로 오늘 날까지 발견된 식물이 50만종, 동물은 120만종이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만도 약 4,500여종이 된다고 합니다. 봄에 피는 라일락, 벚꽃, 철쭉, 튤립, 함박 웃는 함박꽃, 오 내사랑 목련, 여름에는 봉숭아, 채송화, 해당화, 나팔꽃, 해바라기, 가을에는 코스모스, 맨드라미, 국화, 달맞이꽃, 겨울에는 동백꽃, 매화 등등 실로 그 종류를 헤아리기 힘들 만큼 다양한 꽃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밥상에 잘 오르는 고등어, 조기, 갈치, 넙치, 가자미 또 작지만 뼈대가 있는 멸치, 회로 잘 먹는 돔이나 광어, 도다리, 우럭, 방어 등등 물고기의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또 밀림의 왕 호랑이, 초원의 왕 사자, 베드로를 슬프게 한 닭, 원숭이, , 코뿔소, 하마, 하이에나, 여우, 늑대, 수달, 너구리, 개미핥기 등등 참으로 생김새부터 크기나 모양이 개성 만점인 동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은 생물을 아름답고 각각의 특성과 개성에 맞게 다양하고 Colorful하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실로 최고의 예술가이십니다. 그 지혜와 능력이 무궁무진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섬세하시고 인격적인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의 세계를 보고도 누가 감히 하나님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편 8:1).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지으신 것들을 보시는 소감이 어떠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각 피조물을 창조하신 후 한결같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4,10,12,18,21,25). 이 말씀의 뜻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이 처음부터 자신이 계획하고 뜻한 대로 완벽하게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이 지으신 것 중에 하나님의 계획과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 완전하고 선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져 어느 하나 폐기할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볼 때 하나님이 만드신 것 중에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모기는 별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바퀴벌레나 지렁이는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바퀴벌레와 지렁이도 하나님의 멋진 창조물입니다. 지렁이는 흙을 먹고 분변을 내보내는데 이 분변은 영양 만점의 흙으로 땅을 기름지게 합니다. 또한 땅 속을 헤집고 다님으로 흙이 숨을 쉴 수 있게 해줍니다. 지렁이는 무엇인가 시원찮아서 없어져 버리거나 다른 동물로 진화해야 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완벽하게 생활하고 있는 하나님의 멋진 피조물입니다. 이와 같이 작은 피조물 하나만 잘 살펴보아도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랜시간 동안 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며 살았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저의 가정의 불화로 인해 슬프고 운명적인 생각에 오랜 시간 갇혀 살았습니다. 나는 왜 이런 못난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이 같은 불행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싶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매일 지속되는 싸움으로 마음에 병을 얻으셨는지 제가 군에 있을 때 정신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어머니가 세상에서 부끄러웠고 미웠습니다.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는 나 자신도 미웠고 슬펐습니다. 이런 현실을 잊고 싶어서 저는 거의 매일 노래방에 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곤 했습니다. 게임과 음란물로 날밤을 지새우기를 반복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대학교 2학년때 친구를 통해 UBF성경공부모임에 초청이 되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 이 말씀을 접했을 때 저는 마치 무협판타지를 읽는 것보다 더 황당함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또 아이러니하게도 어둡고 답답하기만 했던 제 인생에 마치 한줄기 빛이 비추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태초부터 특별한 목적과 뜻을 가지고 나를 창조한 분이 계시고, 그분이 나를 보기에 좋다고 하시니 놀라웠습니다. 이 말씀으로 인해 성경공부를 계속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저를 귀하게 여기시고 전국학생수양회에서 민수기 14장 말씀을 들려주심으로 저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심어 주셨습니다. 저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그 땅에 대해 심한 악평을 하고 스스로 메뚜기라 여기는 열 두령과 정반대로 그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요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고 말하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보면서 어떻게 똑같은 땅을 정탐하고도 이렇게 다른 반응이 나타날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세상을 보는 인생과 그렇지 않은 인생에 이렇게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바로 스스로를 메뚜기로 여기고 매사에 불평하고 원망하는 열두령과 같은 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도 이 같은 삶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고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창조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겠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 열망은 그때로부터 1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인생을 생명과 빛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운명의 노예로 살다가 죄와 어둠가운데 비참하게 죽을 저를 말씀의 빛으로 찾아오셔서 제 속에 있는 모든 어둠의 세력을 걷어내시고 생명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태초에 천지가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를 배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심으로 이 세상 모든 만물과 우리 인생들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창조주 하나님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과 같이 어두운 삶에서 벗어나 질서가 있고 다양하고 풍성하며 해같이 밝고 빛나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지혜롭고 행복한 삶이 또 어디 있을까요? 이 시간 우리 각 사람이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성경을 통해 더욱 깊이 만나게 되길 소망합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1)

 

2019년 창세기 1강 메시지 0101 0125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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