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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여름수양회 주제 3강 메시지 천모세

창세기 12:1-9

 

 

너는 복이 될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창세기 12:2)

우리가 23일 동안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복을 계속 읽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이 무엇인지 감이 잡힙니까? 저는 조금 감이 잡힙니다.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이 무엇인지 더욱 선명하게 느낌이 왔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복이 될지라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말씀을 따라 행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아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되었습니다. 많은 나라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자신이 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복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복덩이가 되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복, 복덩이가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보여 줄 땅으로 가라(1)

1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먼저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아브람은 그의 아버지 데라와 함께 하란에 살고 있습니다(11:31).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 그리고 그 집안은 믿음의 뼈대가 있는 집안이었습니다. 아담이 말씀을 어기고 두려워 하나님을 피해 숨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여자의 후손이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하게 만든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담은 이 말씀을 받아들여 그 아내의 이름을 산 자의 어머니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아담의 아들 셋을 거쳐 노아에게, 또 노아의 아들 셈을 거쳐 데라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집을 떠나라 하십니다. 왜 그러십니까? 믿음의 뼈대만 있고, 믿음의 내용을 잃어 버렸습니다. 노아시대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습니다(6:2). 그들이 육신이 되었습니다(6:3).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6:5).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떠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는 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마태복음 24:38,누가복음 17:28,18:27). 이를 보신 하나님께서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근심이 되어,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6:6).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런데 홍수 심판 후에도 사람들의 마음이 여전하였습니다. 이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하셨고,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습니다(8:21).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기 이름을 내고 자기들의 안전을 구하고자 바벨탑을 쌓았습니다(11:4).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었습니다(로마서 3:11,12).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복을 주시고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아하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난감하게 된 때에 그래도 믿음의 뼈대가 남아 있어 여자의 후손이 와서 사탄을 이길 것이라는 실낱같은 믿음이 이어지고 있는 아브람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 하셨습니다.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항상 악할 뿐인데서 떠나라 하십니다.

저도 나름 믿음의 뼈대가 있는 집 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영접하고 캠퍼스 역사에 부르심을 받아 쓰임 받는 부모님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끊임없이 끌려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 집에서 포르노를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역겨웠지만 곧 포르노 테이프를 열심히 찾아서 보게 되었고, 옆집 화장실, 식당 남녀공용 화장실에 들어가 훔쳐보기도 하였고, 혼잡한 버스에 일부러 올라 몸의 접촉을 즐겼습니다. 대학에서는 여자 친구와 매일 캠퍼스 안팎에서 정욕을 채우고, 임신할 것이 두려워 사후피임약을 먹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육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남들 다 그렇게 사니까 괜찮다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어디로 가라고 특정하지 않으시고,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적지를 정해주신다면 기계처럼 움직이면 될 것입니다. 또 이 곳이 내가 가고 싶은 땅인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땅인지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니 진실로 하나님의 뜻에 따르려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의학전문대학원에서서 정해진 수업을 듣고 재시험 치지 않으려고 공부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전공이라는 것을 정하려니 막막하였습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는 잘 모르겠고, 차라리 목자님께서 어떤 과 가라고 정해주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만약에 제게 어떤 과를 가라고 방향을 주시고 제가 그 과를 갔다면 실상은 하나님께 대한 생각은 전혀 없으면서도 그 과를 간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기계적인 순종이 아닙니다. 믿음은 자신이 생각하고 자신이 하나님 편에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임의로 먹도록 자유를 먼저 주셨습니다(2:16). 그리고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인지 먹지 않을 것인지 결정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구체적인 장소는 말씀해 주지는 않고, 아브람에게 약속을 하십니다. 아브람이 결정하도록 하십니다. 무엇이라 하십니까?

 

너는 복이 될지라(2,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십니다(2).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어디로 가야할지 구체적인 장소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았지만 복의 내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먼저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룰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늙어 임신하지 못하여 자식이 없었습니다(11:30). 아브람에게 있어 자식 없는 것이 그에게 항상 간절한 결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하시되 아브람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그가 받을 복이 무엇인지 알아듣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이 무엇으로 고민하는지 어떤 결핍이 있는지 아십니다. 자식 하나 없는 아브람에게 큰 민족이라는 단어가 들렸을 때 그의 마음이 확 열렸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겠다 하십니다. 약속대로 아브람은 아브라함이 되어 그 이름이 지금 여기서도 유명합니다. 아브람은 고상한 아비입니다. 그가 고상한 아비에 그쳤다면 이렇게까지 유명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여러 민족의 아버지입니다(17:5). 하나님께서는 너로 복이 될지라약속하시니, 이는 그가 고상한 아비에서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3절을 봅시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하나님께서는 이같이 아브람이 아브라함,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어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 복덩이는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이 복을 얻는 존재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범위가 자신의 눈에 보이는 이웃뿐만 아니라 나라와 시대와 문화를 넘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하는데 쓰임 받습니다. 진실로 복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시고자 하는 복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전에 저는 의대라는 문턱만 밟으면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의대에 세 번이나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생겨, 수시로 합격하여 지금은 응급실 전문의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과연 이것이 제가 그토록 바라던 삶인가 라는 의문도 듭니다. 응급실 의사 자체가 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응급실에 가는 것이 무섭습니다. 한 순간의 실수로 고소를 당하여 3년째 경찰서와 법원을 오가는 동료를 보면서 나에게도 그런 일이 생기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어느덧 저는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나에게 별 문제가 안 생기기를 바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과연 복을 받았을까, 그가 받은 복은 과연 무엇일까 몹시 알고 싶어졌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어떻게 하였습니까? 그래서 그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4-9)

4절을 봅시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떠나기보다 장착해야 할 때인 것 같은데 그는 떠났습니다. 아브람이 하나님께서 주실 복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다 알고 떠난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전합니다(히브리서 11:8). 그는 믿음으로 떠났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떠나는 것이 복이 되는 시작입니다.

그런데 롯은 아브람과 함께 갔습니다. 그의 결정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삼촌 아브람,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자기 눈에 좋을 대로 멸망당할 땅 소돔에 갔고, 저주의 자식들을 낳았습니다(13:10,19:36-38).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든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5). 아브람으로서는 그의 아버지 데라가 가려다가 가지 못했던 가나안 땅으로 갔습니다.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렀습니다(6). 아브람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는데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셨습니다. 아브람이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7).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고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8). 그는 양을 치는 유목민이라 그 지역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살았습니다(9). 이 곳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 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긴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누구라도 답답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계속 말씀을 따라가는 사람에게 나타나시고 그 길을 보여주십니다.

최근에 저는 누나에게 전화를 걸어 2006년에 제대를 앞두고 있던 저를 수양회에 초청해 주어서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엄마와 누나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니 거의 인생을 드리면서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수양회에 가서 제 인생이 발목을 잡히기는 싫었지만, 한편으로는 인생을 재대로 살고 싶다는 소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수양회에 참석하였는데, 나의 인생을 뒤흔들만한 감동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은 참 편안하였고 저의 마음도 편안하였습니다. 수양회 이후에 여름방학동안 비전 40팀에서 함께 로마서 공부하면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로마서 1:21,22) 말씀이 곧 나의 모습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귀던 여자 친구와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가 정리가 되자 저의 삶의 방향은 단순해지고 분명해졌습니다. 20073월에는 캠퍼스에 올라 이동진 형제와 말씀공부를 하였습니다. 죄를 지으면서 오는 부끄러움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기쁨이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김해로 다니며 캠퍼스 모임, 일대일, 토요 리더 소감 모임, 주일 예배를 드리고 마치면 함께 식사하고 설거지도 하고 운동하고 주일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가곤 하였습니다. 모든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은 피곤하였지만 말할 수 없이 기쁘고 평안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였습니다. 또 시험을 얼마 앞두고 다시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극심한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도서관 자리 앉아 있어도 집중이 잘 되지 않았고 답답하여 담배를 한 갑 사서 한 대를 피우고 나머지는 버리는 삶을 반복하곤 하였습니다. 이 때 주일 예배에서 바다에 빠져가는 베드로를 즉시 잡아 주시는 예수님이 계심을 깨닫고, 두려움이 생길 때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기도하였고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수시모집에서 면접관의 질문을 받고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자 면접관이 다시 말해 보라 하였는데 그 때 멘붕이 되지 않고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속으로 외치며 다시 대답하였고 합격을 하였습니다.

저는 지하 예배실에서 합격 문자를 받고 주께서 저를 이 곳에 합격 시키셨으니 주의 뜻대로 살겠다고 기도하였습니다. 친구들에게 합격소감을 프린트 하여 나누어 주고 그 해 세 명의 친구를 여름수양회에 초청하였습니다. 이전처럼 죄를 짓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매일 캠퍼스에서 양식 기도모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생각은 별로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빠져서 정작 하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결혼과 전공을 정하려니 제가 믿음이 없이 제 눈에 좋은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저는 제 눈에 예뻐 보이는 PK 누나를 좋아했고, 사람의 심장과 폐를 만지며 의사로서 이름을 내는 일에 마음이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믿음의 결혼도 하고 당직과 휴일이 분명하여 캠퍼스 역사를 섬길 수 있는 응급의학과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육신대로 살다가 멸망할 삶을 살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결단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누릴 것인지 생각할 때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쁜 아내도 얻고 자식도 얻고 대학병원에서 의사로 일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리고는 말씀을 듣고자 하는 필요성도 간절함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성경공부를 하러 왔습니다. 저는 몇 년 매주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 같나요?’ 하는 똑같은 질문에, 매번 똑같이 답을 못하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런 저를 보고 너무도 이상했는지 목자님께서 말씀공부하러 와서 말씀은 생각 안 한다고 2시간 넘게 야단을 맞고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지만 그 때 뿐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보다 혹시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빼앗기지는 않을까,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는 않을까 싶어 노심초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창세기 말씀을 계속 읽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간 아브람이 어떻게 되었는가를 살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며 이십오 년만인 백세에 사라에게서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21:1).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셨습니다(22:1,2). 이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였고, 그 아들 이삭을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모순되는 것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이 모순되는 것 같이 보이는 문제를 스스로 풀었습니다. 믿음으로 그는 그 외아들을 드렸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하였습니다(히브리서 11:17-1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말리시고, 그에게 여자의 후손을 그의 씨에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22:17,18) 이 복이 그가 받은 복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 복을 받았습니까? 아브라함은 생각하되 자기의 마음대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생각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선악간의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므로 그의 죽은 아들이라도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믿음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번에 메시지를 맡은 것은 제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의 실제 생각은 고난은 감당하기 싫고 조금 더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사는 것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응급실에 다시 가기가 싫었습니다. 여러 번 응급실 상황에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따라가는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고난을 감당하고자 결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한참 고민이 심한 때 강남에서 돈을 잘 벌던 피부과 원장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가 아내를 따라 교회를 갔다가 하나님께서 웬만하면 네가 가라하시는 것 같은 부르심을 듣고 이전 월급의 1/4 안 되는 진주로 내려가서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환자를 가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져서 각종 피부과 질환으로 고통하는 환자들이 와서 치료를 받고 있다 하였습니다. 돈은 적게 받고 일은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전에 서울 강남 피부과에서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과 보람이 있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제게 웬만하면 네가 가라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올해 3월부터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전임의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수님에게 주일에는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하였고 센타장님이 주일에 근무를 서고 제가 토요일에 근무를 서도록 배려를 해 주셨습니다. 응급실 상황은 육적으로 영적으로 전쟁터입니다. 전투에서 이기려면 무장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매일 15분이라도 당직실에 들어가 일용할양식을 먹고 잠깐 기도하고 다시 일하러 가면 하나님께서 고난을 감당할 만한 힘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복을 받고 복을 나누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복은 다른 사람을 잘 되게 하는, 다른 사람을 살리는 복입니다. 탁구를 잘 치는 방법은 다른 사람이 잘 칠 수 있도록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왔다 갔다 재미도 있고 점점 강한 공도 주고 받을 수 있게 됩니다. 나 혼자서 잘 되는 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잘 되게 하는 것이 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응급실에서도 조금씩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환자들이 어디가 불편할까 고민하며 물어보고 듣고 신체진찰을 하고 진단을 내립니다. 전공의 선생님이 빨리 일을 배워서 내 부담을 줄여주기를 바라던 데에서 제대로 된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알고 있는 것을 가르쳐줘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공의 선생님과 성경 공부를 하고 있는데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누리고 사람을 살려내고 아들을 믿음으로 키우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집에서 애들이 건강하게 아무 문제 없이 잘 크기를 바라던 데에서 아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복을 얻는 삶이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직장에서 돌아와 애들 보는 것을 귀찮아 하던 데에서 말씀을 가지고 아이들과 생각하며 나누도록 기도하게 됩니다.

 

저의 삶을 돌아볼 때에 제가 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축복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말씀을 따라 살면, 가랑비에 옷이 젖어가듯이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말씀의 복을 누려가는 사람이 되어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사람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생육 번성 충만하고 다스리는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이 시간, “너는 복이 될지라말씀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 각 사람이 말씀을 듣고 따라 복을 빼앗기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누리고 나누었던 사람 살리는 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멘!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세기 12:2)

 

2020 여름수양회 3강 메시지 창세기 1201-1209 천모세.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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