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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에스라 4강 정여호수아

에스라 7:1-8:36

 

 

에스라의 결심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에스라 7:10)

성전이 완공되었고 이제 이스라엘은 다시 새롭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이 일 후에 시간이 흘러 백성들의 신앙이 부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활동했던 말라기 선지자의 기록에 따르면 그들은 눈먼 짐승을 제단에 제물로 바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했습니다. 백성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남자들은 우상을 섬기는 이방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10:11). 영적 침체에 빠져 다시 바벨론 포로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들을 하나님은 어떻게 도우십니까?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7:1-9)

1절을 봅시다. 이 일 후 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곧 다리오 왕 때에 성전건축을 이룬 후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까지 왕권이 두 번이나 바뀔 정도로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때에 에스라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이며(1-5),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습니다(6). 또한 그 이름의 뜻이 도움인데, 에스라는 그 이름대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였습니다(6). 사실 포로 백성 출신으로서 이런 높은 위치까지 올라간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가 어떻게 이같이 형통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그는 대적들의 방해로 16년간 중단되었던 성전건축역사 어떻게 해서 4년만에 완공되는지 그 형통의 비결을 알았습니다. 유다 장로들이 선지자들의 권면을 따름으로 된 일임을 알았습니다. 그 반대로 그의 조상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것도 선지자의 권면을 따르지 않음으로 된 일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 이방세계에서도 하나님이 없다하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삶을 살았습니다(1:1,2). 그리할 때 그는 페르시아의 법과 사상에 동화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요, 빼어난 말씀의 종이 되었습니다. 말씀에 따라 세상을 주관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깨달아 통달하게 되었습니다. 왕과 자문관들은 어려운 국사를 논할 때마다 이런 그를 찾아 자문을 구하였고, 그는 꼭 필요한 조언을 해줌으로 왕에게 가장 신임받는 신하가 되었습니다. 그 이름대로 어디에서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세상에서 낙오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면 에스라처럼 도리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쓸모있는 사람이 됩니다. 지혜와 진리를 찾는 사람들의 길잡이가 됩니다. 어둠가운데 헤매고 있는 사람들을 옳은 대로 돌아오게 하는 별과 같은 존재가 됩니다(12:3). 요즘 진리가 계속 무너지고 있습니다. 권위와 질서가 다 붕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가정과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 기초적인 것들조차 흔들리고 있습니다. 정말 무엇을 의지하고 붙들고 살아야 할지 몰라 두렵고 혼란스러운 세상입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에게는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의지하는 것이 진정 형통의 길입니다. 주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이 믿음 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런데 에스라가 누구와 함께 어디로 올라왔습니까? 7,8절을 봅시다. 아닥사스다 왕 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성전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첫째달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나 다섯째 달 초하루, 곧 약 4개월 만에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9).

지금 에스라는 페르시아에서 왕의 절대 신임을 받고 있는 고위관리입니다. 왕궁에서 얼마든지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반면에 예루살렘은 성전은 세워졌지만 성벽조차 세워져 있지 않아 치안이 매우 불안합니다. 또 올라 가는 길에 어떤 어려움을 만나게 될지 알수도 없습니다. 한쪽에는 안정된 삶이 보장되어 있고, 반면 다른 쪽에는 장래를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고난의 가시밭길이 예상됩니다. 그럼에도 에스라는 2차 포로귀환민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마치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받기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길을 선택한 모세처럼 예루살렘에 올라왔습니다(11:24).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10)

다같이 10절을 한 목소리로 읽어 봅시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한마디로 그의 마음에 결심한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결심하였다는 말은 헌신하기로 했다’, ‘여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기로 했다는 뜻입니다. ‘전념하기로 했다는 뜻입니다. 그가 헌신하고 전념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붙기로 한 그 결심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가 왜 이런 결심을 했을까요? 성전이 재건 되었지만 그들의 신앙은 재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돌아온 백성들이 다시 포로기 이전 시대의 조상들의 망령된 행실을 따라 살기 시작했습니다. 율법이 해이해지고, 제사를 멸시할 뿐 아니라, 심지어 이방인들과 통혼까지 하기 시작했습니다(9:1,2). 신앙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보면 성전 건물을 짓고, 제사를 지내고, 절기를 지키고, 어떤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그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근본적인 변화, 곧 그 속 사람의 변화는 이런 외적인 것들을 구축하는 것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진정 변화의 능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에 있다고 보았습니다. 율법을 통해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 깨닫고 배우는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일에 전적으로 자신을 드리고자 결심했습니다.

이 시대에도 여러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너무도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결의 실마리 조차 찾을 수 없어보이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여호와의 말씀에서 멀어지고 벗어나는 데서 오는 문제입니다. 말씀안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답이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를 분명히 알았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알게 하고자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로 결심하고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고자 합니다. 여호와의 도움을 받은 그는, 이제 도움이 필요한 자기 동족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는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기에 앞서 먼저 무엇을 하고자 결심했습니까? 먼저 그 자신이 율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그는 이미 모세의 율법에 능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그는 더욱더 성경을 연구하고자 결심했습니다. 어떤점에서 연구의 필요를 느꼈을까요? 에스라 당시에 모세의 율법은 1000년전에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반면 바벨론에서 포로로 살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상황이나 처지는 분명 다릅니다. 그러니까 1000년전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 포로에서 돌아와 언약 백성으로 살고자 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어떻게 적용하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역대기서입니다.

우리 모임은 성경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합니다. 그런점에서 말씀을 사랑하는 모임입니다. 그런데 이전에 배운 말씀에만, 기존에 배워 왔던 그 말씀에만 계속 머물러 있고자 하기 쉽습니다. 이미 공부한 부분에 대해서 이미 본문을 알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 깊이 생각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실제로 말씀을 잘 알고 있을까요? 저는 올해 봄학기 사도행전 말씀을 공부하면서 새롭게 다가오는 본문 말씀이 참 많았습니다. 이번 에스라말씀을 연구하면서도 제가 구약 역사에 대해서 정말 모르는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성경을 연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은 왜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함과 기대를 잃어버린데에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써 누구보다 말씀을 많이 알고 있었음에도, 말씀에 대한 경외함과 겸손한 자세를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지금 당면한 그 시대의 문제도, 이미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음을 알고, 부지런히 말씀을 읽고, 말씀을 연구했습니다. 말씀에 답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돌아가면 회복의 길이 열립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말씀자체를 알고 말씀을 알고 배우는 믿음의 자리로 계속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할 뿐 아니라, 그 연구한 율법을 준행하고자 결심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좋아합니다. 물론 말씀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귀합니다. 그런데 정말 귀한 것은 공부한 말씀을 실제로 준행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지식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그 말씀에 실제로 순종하지 않으면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기도에 대한 약속의 말씀은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다!” 라는 말씀은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이 말씀에 아무리 감동을 받는다 할지라도 정작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의 능력은 그 말씀에 순종할 때 나타납니다. 에스라가 진정으로 말씀의 사람인 것은, 연구하여 깨닫게 된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고자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연구할 때 그 말씀에 담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깨닫게 됩니다. 깨달은 말씀이 있을 때 마음에 감동이 임합니다. 손발이 움직입니다. 말씀이 능력으로 나타나기를 사모함으로 순종의 자리로 계속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깨달은 한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는 믿음의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말씀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자리에 있습니다. 자리와 직분이 저를 세워주고 지켜 줄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초 정작 저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고 이를 실제로 준행하지 아니할 때, 주의 말씀이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도리어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할 뿐이었습니다. 말씀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주의 이름이 비방을 받는 일을 하게 될 뿐이었습니다. 너무도 아픈 경험이었지만 평생 기억해야 할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제가 제 신앙양심을 따라 매순간 다윗과 같이 정직하게 행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 한가지 결심을 따라 행하여 주께서 쓰실 수 있는 사람이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번 가을수양회에 열왕기상 말씀을 공부하게 됩니다. 우리 각 사람이 엘리야말씀을 새롭게 듣고 받아 심령이 새로워지고 이 패역한 시대를 싸워 이길 힘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러면 이같이 결심한 에스라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내 하나님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11-28)

아닥사스다 왕은 조서를 내려 바사왕국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 중에 예루살렘에 올라갈 뜻이 있는 자는 누구든지 에스라와 함께 올라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11-13). 그뿐 아니라 일곱자문관의 동의하에 성전 제사와 운영을 위한 국고를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습니다(15-23). 또한 성전 사역자들에 대한 면세조치를 해주고(24), 심지어 에스라에게 인사권을 주어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들을 법관과 재판관으로 세우도록 했습니다(25). 그들을 통해 모든 백성들을 재판할 뿐만 아니라 율법을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또 사법권을 주어 사형, 귀양, 가산몰수, 투옥을 할 수 있는 권한까지 다 주었습니다(26). 정말 하나님 모르는 이방왕이 내린 조서가 맞는가 싶습니다. 이보다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 왕이 있었는가 싶습니다. 실제로 왕의 마음을 얻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왕의 마음을 움직여도 왕의 자문관 7명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아닥사스다 왕과 자문관과 모든 방백들의 마음까지도 감동시키심으로 된 일입니다.

이에 에스라는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합니다(27).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에 예루살렘 여호와의 성전을 아름답게 할 뜻을 두시고(27), 또 자신을 왕과 그의 보좌관들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음을 감사합니다(28). 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 진 것은 오직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으므로 된일 임을 그가 고백합니다(28). 이처럼 하나님의 손은 언제나 거룩한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자 위에 있으십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 어디까지 미쳤습니까?

우리를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8:1-36)

사실 왕과 자문관과 방백들의 마음을 그렇게 얻었다고 해도 정작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순탄하게 이루어져서 에스라와 마음을 같이하여 올라가는 족장들이 있었습니다(1-14). 이로써 에스라를 중심으로 2차 포로 귀환역사가 이루어 졌습니다. 물론 1차 때에 비해서 숫자가 많이 적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고자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에스라는 이들을 귀하게 여기고 역사에 남겼습니다. 순탄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15절을 보면 명단을 정리하여 바벨론에서 출발하려고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모였을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인원파악을 해보니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을 새롭게 해야 하는데, 실제적으로 그 일을 감당할 일군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혼자 할 수 없습니다. 동역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에스라는 어떻게 했습니까? 비록 시간이 지체될지라도 모든 족장들을 불러모아, 명철한 두사람을 가시뱌 지방의 지도자 잇도에게 보내었습니다. 그들에게 할 말을 일러주며 하나님의 성전을 섬길 자를 데려오도록 했습니다(16-17). 그리하였을 때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그 외에 여러 명의 레위인과, 성전일꾼 느디님사람들 200명 가량을 데려왔습니다(18-20). 처음에는 비협조적이지만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함으로 레위인들이 동참하는 귀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이같이 에스라는 동역할 사람들을 세우며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그때에 에스라는 무엇을 하였습니까? 21절을 봅시다. 에스라는 출발하기에 앞서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들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간구하였습니다(21). 엄청난 예물을 운반한다는 사실이 조서를 통해 제국전역에 알려지면서 도둑떼들을 노릴 것이 너무도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보병과 마병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자 금식을 선포했습니다(22). 하나님께서 그들의 간절한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응낙해 주셨습니다(23).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31절을 봅시다. 대적들이 있고, 매복한 자들이 그들을 분명 노리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손이 그들의 손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그리하여 4개월 만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3일간 쉬고 가져온 모든 예물을 다 세고 달아보니, 그 총량에 손실이 전혀 없었습니다(32-34). 외부의 도적들은 물론이요 내부에서 손을 댄 자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간의 범죄나 아나니야와 삽비라 같은 누룩이 전혀 없었습니다. 왕의 조서가 총독들에게 전달되니 그들이 백성과 하나님의 성전을 도왔습니다(36). 이처럼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여 백성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한 에스라를 하나님은 기뻐 받으시고 그가 그 결심대로 행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볼 때 누가 여호와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움을 받습니까? 에스라와 같이 말씀을 따라 살고자 결심하는 사람, 말씀따라 살고자 할 때 받는 고난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과 함께하십니다. 그 사람을 주의 성전을 세우는 역사에 귀하게 쓰십니다. 주께서 우리 안에 계속해서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는 믿음과 소원과 결단 주시길 기도합니다.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에스라 7:10)

 

2023년 에스라 4강 메시지 0701-0836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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