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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에스라 1강 정여호수아

에스라 1:1-2:70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에스라 1:1)

우리는 올해 신년 말씀으로 이사야 말씀을 따라 새 일을 행하실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소망으로 시작했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에스라서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행하신 그 새 일의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이 70년 만에 포로생활에서 놓여나 본국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무너진 성전을 회복하게 됩니다. 허물어진 그들의 신앙을 회복하고 정체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그들가운데 어떻게 해서 이 같은 놀라운 새 일이 있게 된 것입니까?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1-4)

1절을 봅시다. 때는 바사 왕 고레스 통치 원년, BC 538년 이었습니다. ‘고레스는 동부 엘람의 작은 나라 얀산의 왕에 불과했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바벨론을 정복하여 20세의 나이에 바사 제국의 초대 왕이 됩니다. 바사 제국의 동쪽으로는 인도, 서쪽으로는 애굽, 남쪽으로는 페르시아만, 북쪽으로는 카스피해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런 거대한 바사제국 중에서 이스라엘은 변방에 속한 아주 작은 소국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런 이스라엘에 대해서 고레스가 어떤 공포와 조서를 내립니까?

2,3절을 봅시다. 먼저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다고 합니다. 또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신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이 자신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셨으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그 주변 사면의 사람들도 은과 금과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성전을 위하여 예물을 기쁘게 드리라고 합니다(4). ! 하나님 모르는 바사 왕 고레스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습니까? 그가 어떻게 이같은 명령을 한 것일까요? 바사 제국을 이루는 데 유다 백성 중에 혁혁한 공을 세운 어떤 공신의 입김이 작용한 것일까요? 아니면 세속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남방세력을 견제하고 정복하기 위한 교두보로서 예루살렘이 지정학적으로 가장 적합한 위치에 있어서 고레스가 이곳만 특별 관리를 하려고 한 것일까요?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증거합니까?

1절을 다시 봅시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킴으로 된 일이라고 합니다. 곧 하나님이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 고레스의 마음에 움직이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레미야 2910절을 보면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사 왕 고레스를 통해 이 말씀을 그대로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볼 때 그들이 70년간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지 못하고 바벨론 포로로 산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 진일입니다. 북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속히 떠나 우상숭배를 한 죄로 앗수르에게 멸망을 당함을 보고도, 남유다는 그 죄에서 돌이킬 줄 몰랐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내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너희를 넘겨주겠다고 경고하셨는데도, 그들이 끝내는 그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바벨론의 손에 넘기사 그들로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끌려가는 큰 고통과 슬픔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은 백성이요 잊혀진 존재가 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때가 되자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하신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시고 정확히 70년이 되는 해에 바사 왕 고레스를 감동시키사 그들이 바벨론 포로의 신분에서 놓여나도록 일하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고 끝까지 돌보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에게 하신 그 약속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보지 못할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볼 때, 또 지금 내 주변에서 돌아가는 여러 상황과 형편을 볼 때 내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나겠나 싶습니다.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루 하루 소망없이 그저 먹고사는 일에 치여서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상황은 어둡고, 변화되지 않는 나의 삶 속에 무슨 구원이 있겠고, 또 무슨 회복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믿음으로 살고자 나름 애를 쓰지만 번번히 같은 죄와 실수로 다시 넘어져서 하나님을 슬프시게 할 수밖에 없고, 아무리 씻어내고, 닦아내도 실제로는 지워지지 않는 것 같은 주홍같이 붉은 내 죄가 어떻게 정말 흰털같이 깨끗하게 될 수 있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소망의 메시지가 들려옵니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머나고도 먼 유대 땅에서, 그것도 2000년도 전에 태어난 이스라엘 왕, 예수께서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못박혀 죽으시고 다시 사셨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 다 이루사 내 모든 죄가 다 사함을 받았다는 기쁨의 소식이 계속 들려옵니다. 이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가 죄의 포로된 삶에서 놓여나 하나님이 사랑하고 기뻐받으시는 주의 자녀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 기쁜 소식이 매 주, 그리고 매일 우리의 귀와 마음에 들려옵니다. 이 소식을 생각하고 기억하고 마음에 담아둘 때, 어둡고 절망적인 생각들이 점차 물러가고 마음이 밝아지고, 위로부터 알 수 없는 잔잔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힘이 나지 않던 발과 발목이 다 힘을 얻고, 누워 있던 대서 일어나 걸어가게 됩니다. 고레스를 통해서도 말씀을 이루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앞으로도 우리의 삶을 통해 말씀을 이루어 가시고 그 말씀을 지켜가실 것입니다. 아멘!

고레스가 내린 조서로 인해 어떤 역사가 있었습니까?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다 일어나니(5-11)

5절을 봅시다.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기가 실제로 쉽지가 않습니다. 고레스 왕이 허락을 해줘도 막상 당사자들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 가겠다고 할수도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사로잡혀 온 후 이곳 바벨론 땅에 정착한지 70년이 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면한다고 했습니다. 짧지 않은 세월입니다. 이곳에서 닦아 놓은 삶의 기반들, 토지와 집과 사업들이 어마어마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갈려면 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나야 합니다. 엄청난 물질적인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가는 길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몇개월이 걸릴지도 모르는 긴 광야 길을 걸어서 가려면 엄청난 육신의 고생도 각오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 모든 수고와 희생과 고난을 각오하고서라도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성전을 건축하고자 다 일어났습니다. 대단한 믿음의 결단의 역사입니다. 그들 가운데 어떻게 이 같은 믿음이 결단의 역사가 있었습니까? 성경은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음으로 된 일이라 증거합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께 감동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 감동을 따라 하나님이 감동하시는 그 일에 마음이 향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마음이 향하고, 그 일에 자기의 힘과 열정을 기꺼이 쏟아 붓습니다. 70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도, 물질적인 손해가 막심해도, 거리가 너무 멀고 또 환경이 척박해도, 미래가 불투명해도,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 크더라도 어떤 크고 위험한 장애물이 있더라도 이를 개의치 않습니다.

일어난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5절을 보면 주로 족장들과 제사장과 레위사람들, 곧 당시 바벨론 유대 공동체에서 지도자 역할을 감당하던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백성의 리더들이 성전을 건축하는 역사에 가장 먼저 발 벗고 나선 것입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열왕기나 역대기서를 보면 대부분 왕이나 지도자들이 부패하고 타락함으로 인해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속히 떠나는 역사의 반복이었습니다. 그 결과 결국은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지도자들이 지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루살렘으로 앞장서서 돌아가 무너진 성전을 스스로 건축하고자 합니다.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크고 놀라운 새 일을 행하셨습니다. 마른뼈와 같았던 그들이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이같은 새 역사, 감동의 역사가 그들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6절을 봅시다. 그 사면 사람들도 자신의 은 그릇과 금과 물품들과 짐승과 보물로 그들을 돕고, 예물을 기쁘게 드리는 역사도 있었습니다(6). 그들은 엄위한 왕의 명령이 무서워서 예물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자원함으로 드렸습니다. 이방 백성들 가운데서도 이전에는 없었던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고레스 왕 자신도 그들을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7,8절을 봅시다. 옛적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신당에 두었던 여호와의 성전 그릇을 꺼내었습니다. 창고지기 미드르닷이 그 그릇들을 정확하게 세어 유다 총독 세스바살에게 넘겨 주었습니다. 세어보니 금, 은 그릇이 모두 5400개나 되었습니다(11).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새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고자 하시는 구원 역사는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감동받은 사람들이 기쁨으로 자원하여 일어나 자신을 드리는 역사입니다. 이전의 출애굽 역사가 모세 한사람의 강력한 리더쉽을 의지한 역사였다면 출바벨론 역사는 말씀을 따라 감동받는 사람들이 그 감동된 마음으로 스스로 자원해서 감사함과 기쁨으로 나아간 역사입니다. 무엇이든 억지도 되는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자원함과 감사와 기쁨이 있어야 뜻을 하나로 모을 수 있고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자원함과 감사함과 기쁨은 어디로부터 옵니까? 오늘 말씀을 볼때 감동에서 옵니다. 그런데 그 감동은 다른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십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적혀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칩니다. 어두운 세상과 고난에 가려지고 닫혀진 눈이 떠집니다. 하나님께서 내 삶속에서도 어떻게 말씀대로 이루어 가시는지 그것이보이고, 이것을 하나하나 깨닫고, 보게 되는 것에서 감동을 느낍니다.

요즘 cbf들이 성경읽기 경쟁이 붙었다고 합니다. 말씀을 열고 펼치는 역사가 있다고 합니다. 성경을 더 많이 읽지 못하는 것으로, 성경을 잃어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슬퍼하는 갈렙이를 보았습니다. 집에 들어오면 누워서 쉴 생각만 하던 제가 회개하는 심정이 되었습니다. 피곤한 몸을 일으켜 다시 말씀을 읽고자 마음을 다잡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씀 읽기를 통해 잃어버린 감동을 다시 되찾고, 주의 몸된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자원함과 감사와 기쁨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마음에 감동을 받아 실제로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일어난 사람은 구체적으로 누구누구입니까?

돌아간 자의 명수가 이러하니(2:1-70)

1,2절을 보면 이 역사의 총지휘자는 스룹바벨과 예수아입니다. 스룹바벨은 바벨론으로 끌려간 여호야긴 왕의 손자입니다. 예수와는 제사장 여호사닥의 아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바벨론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스룹바벨이라는 말 자체가 바벨론에서 태어났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들은 바벨론땅에서 태어나서 바벨론 말을 쓰며 바벨론식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장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면 그들의 부모들이 얼마나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철저히 시켰는가 알 수가 있습니다. 포로 1세대들은 대부분 고국 땅만 그리다가 이방땅 바벨론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녀들에게 분명하게 신앙교육을 시켰습니다. 예레미야가 한 예언의 말씀을 따라 그들이 정착해야 할 곳은 이곳 바벨론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땅 예루살렘임을 분명하게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모국어를 가르치고, 성경을 가르치고, 기도를 가르치고, 역사의식을 심었습니다. 그랬을 때 마침내 포로 2세대들이 주축이 되어서 고국으로의 귀환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자기 계보를 아는 사람도 있었습니다(3-20). 계보는 모르고 겨우 조상들의 고향만 아는 자들도 있었습니다(21-35). 제사장과 레위인들도 있었고(35-42), 계보가 불분명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59-63). 어쨌든 이때 돌아온 사람들의 숫자가 42,360명이었습니다(64). 노비들은 7,337명이었습니다(65). 총합 5만 여명이 돌아왔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는 산에서 돌 뜨는 사람만 8만 명이었습니다. 짐 나르는 짐꾼들만 7만 명이었던 것을 보면 이 5만 명의 숫자는 아주 적은 숫자입니다(왕상 5:15). 그러나 하나님역사를 이루는데 있어서는 숫자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에 200만명이 애굽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모두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툭하면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 두려워서 떠는 자, 불신으로 하나님을 슬프시게 하는 자들은 모두 광야에서 엎드러져 죽게 하셨습니다. 믿음있는 소수만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보면 지금 이 5만명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 소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믿음으로 도전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68절을 봅시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그들은 가장 먼저 어디로 갔습니까?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 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기쁘게 드리되그들은 자신들의 집터를 알아보기 위해 명당자리를 보러 다니지 않았습니다. 가장 먼저 여호와의 성전이 있었던 바로 그 곳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목적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감동을 따라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먼저 건축하고자 하는 분명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성전건축역사를 위해서 예물을 기쁨으로 드리되, 힘 자라는 대로 공사하는 금고에 들였습니다(69). 이때 드려진 금이 61000 다릭이요, 은이 5000 마네요, 제사장 옷이 백 벌이었습니다(69). 1다릭이 8.4g정도 라고 하고, 1마네가 560g이라고 합니다. 계산해 보면 금이 약 500kg, 은은 약 3톤 정도 됩니다. 그들은 성전건축역사를 위해 이같이 아낌없이 자기의 건축헌금을 드렸습니다. 이같이 드려진 헌금이 있었기에 자기 기업이 없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백성 몇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이 예루살렘 각 성에 거할 수 있었고, 이스라엘 무리들도 각 성으로 돌아갈수 있었습니다(70).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이루기 위해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도 감동시키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도 감동시키셨습니다. 이에 주의 백성들이 일제히 일어나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일어나 성전건축 역사를 준비하였습니다. 시작된 가을학기에 우리 각 사람이 어떤 삶의 자리에 있더라도 신실하게 말씀을 이루어 가시는 주님을 의지하여, 때마다 말씀으로 돌아가 마음에 감동을 받고, 마음을 같이하여 자원함과 감사함으로 거룩한 성전을 건축하길 기도합니다. 아멘!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에스라 1:1)

 

 

2023년 에스라 1강 메시지 0101-0270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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