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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마가복음 9강 정여호수아

마가복음 5:21-43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마가복음 5:36)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자 할 때 끊임없이 찾아오는 것이 있습니다. 두려움입니다. 예수님 계속 믿고 가다가 내 인생 어떻게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너무 두렵습니다. 특히나 믿기 전보다 상황이 더 안좋아지는 것 같고, 이미 다 끝나버린 것 같은 일을 마주할 때 더욱 그러합니다. 그 무엇으로도 지금 마주하는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고, 해석이 되지 않고, 그렇다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이를 계속 감당하고 헤쳐나갈 내적인 힘은 없고 참으로 괴롭습니다. 도움 주기를 기대했던 주변 사람들은 옆에서 도리어 더 힘 빠지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우리에게 오늘 말씀이 큰 힘과 위로와 방향을 줍니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우리의 믿음의 삶은 예수님의 말씀으로만 풀어집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듣고 받아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 더 굳게 머물며, 예수님이 원하시는 믿음의 결실을 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께서 거라사지방에서 돌아오시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회당장이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5:21-24)

21절을 봅시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오시자 큰 무리가 예수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앞에서 예수님이 떠나기를 간구하였던 거라사 사람들과 그 반응이 전혀 달랐습니다. 그런데 모여든 큰 무리가운데 유독 더 간절하고도 애타게 예수님을 찾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회당장 야이로였습니다(22). 그는 많은 사람들을 뚫고 나와 예수님의 발 아래 그대로 납작 엎드렸습니다(22). 당시 회당장은 대개 그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요, 또 백성들에게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종교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대부분의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대적하는 입장에 서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가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예수님의 발 아래에 엎드렸다는 사실은 정말 충격적인 일입니다. 아무튼 이 일로 인해 자칫하면 그는 회당장의 직분을 잃어버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야이로는 왜 이렇게 한 것일까요?

23절을 봅시다.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 그에게 죽어가고 있는 어린 딸이 있었습니다. 42절을 보면 나이는 겨우 열두살입니다(42). 회당장의 지위에 오를 정도면 야이로의 나이가 적지 않았을테고, 아마도 늦은 나이에 얻은 늦둥이였던 것 같습니다. 또 누가복음을 보면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입니다(8:42). 그러니 야이로가 얼마나 그를 아끼고 사랑했을까요? 그런데 그 딸이 지금 매우 위독합니다. 오늘 내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문으로만 듣던 그 예수님이 지금 이곳으로 오신다고 합니다. 회당장 체면이고 뭐고 이제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예수께서 다만 자기 딸에게도 은혜 베풀어 주시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그의 절박함과 간절함이 예수님께 그대로 전해졌던 것일까요? 이에 예수님은 그와 함께 가셨습니다(24). 많은 무리를 다 제쳐두고 야이로를 따라 함께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누구든지 자기의 실제 문제, 생명같은 문제를 해결받고자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들의 간구를 들으십니다.

그런데 가는 도중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24-34)

그와 함께 가실 때에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미는 중에 열두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예수의 옷에 손을 대었습니다(24,25,27). 왜 뒤로 와서 이렇게 했을까요? 혈루증은 여인들이 하혈하는 부인병으로서 율법에 따르면 부정한 병입니다(15:25). 그렇기에 그가 앉거나 만지는 것은 다 부정해집니다(15:26). 정결을 생명처럼 여기는 유대사회에서 터치하는 것마다 부정하게 만드는 그녀는 어떤 취급을 받았을까요? 기피대상 1호였습니다. 아픈 것도 괴로운데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이 여인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고달팠을까요? 그녀는 아파도 아픈 사실을 꽁꽁 숨겨야 했습니다. 낫고 싶어도 낫고 싶다고 앞으로 나와서 말할 수도 없습니다. 물론 그녀도 이 병을 고치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만 받았고, 그 있는 돈도 다 허비했으며, 도리어 병은 더 심해졌습니다(25). 그런데 이런 그녀에게 예수님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예수께서 자신보다 더한 나병환자도 깨끗케 하셨다는 희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 예수님께 나가면 자신도 나을 수 있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 소망의 불씨가 그로 모든 통념과 경계를 허물고 예수께 나아갈 새로운 길을 찾게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병을 통해 깨달은 진리를 따라 기발한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과 접촉되는 것마다 부정해 진다면, 예수님과 접촉되어 있는 옷만 만져도 깨끗해 질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습니다(28). 이 생각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갔고, 이 확신을 따라 그녀는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믿음을 가지면 어떤 한계 상황에서도 길을 찾습니다. 이것도 할 수 없다 저것도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놀라운 도전을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합니다.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것, 자신의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습니다. 내가 믿는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예수님께 가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그녀는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9절을 봅시다. 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자마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말랐습니다. 여인은 병이 깨끗이 나았다는 것을 즉시 느꼈습니다. 12년 동안 풀리지 않던 인생문제가 이 한번의 믿음의 터치로 한방에 해결된 것입니다. 얼마나 놀랐을까요? 그런데 이 사실은 안 것은 여인뿐만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셨습니다(30). 이에 예수님은 가던 길에서 멈추시고는 뒤로 돌이켜 누가 내 옷을 손을 대었느냐?’ 물으셨습니다(30). 그러자 제자들은 무리가 에워싸 미는 통에 누군가 만질 수도 있죠? 뭘 그런 것 가지고 그러시느냐고 하였습니다(31). 그러나 예수님은 미동도 하지 않고 여인이 있는 쪽을 계속 둘러 보셨고(32), 이에 여자는 더 이상 숨길 수 없음을 알고 두려워 떨며 예수님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었습니다(33). 그러자 예수님은 이런 그녀의 믿음을 축복하시며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34).

여인은 예수님께 나오더라도 자신의 육신의 병이 낫는 것 외의 다른 것은 전혀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드러나게 되리라는 것은 더더욱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의 존재와 그의 믿음을 드러내셨습니다. 굳이 가던 길을 멈추시고 그렇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믿음의 사람에게 예수님이 주고자 하는 것은 육신의 병이 낫는 것 그 이상입니다. 만일 여인이 이대로 그냥 가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평생 예수님을 부정하게 하고 예수님의 능력을 몰래 도둑질 했다는 죄의식과 두려움속에서 살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비록 육신의 부정은 깨끗해 졌을지라도 그의 영혼의 부정은 씻겨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적인 혈루증을 앓으며 살아가야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아셨고 그래서 그 바쁜 와중에도 그녀를 굳이 찾으셨고, 그가 믿음으로 나와 모든 사실을 고백하게 하심으로 그에게 온전한 구원과 평안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바라고 기대하는 구원은 당장 나를 괴롭게 하는 내 인생 문제 해결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구원은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좋은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입니다(1:77). 영원한 안식과 평안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자녀요 상속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1:12). 우리가 어떤 부정함가운데 있어라도 믿음을 가지고 예수께 나가면 예수께서 이를 선물로 주십니다. 그렇기에 믿는 자에게는 언제나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입니다.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29:11). 우리가 이 믿음을 가지고 어떤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예수님께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그런데 여인으로 인해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야이로의 딸이 그만 죽어버렸습니다. 이제 야이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35-43)

35절을 봅시다.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한 사람이 와서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줍니다.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야이로가 예수님께 나올 때, 그의 딸은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죽었습니다. 죽어가는 것과 죽은 것은 다릅니다. 죽어갈 때는 뭔가를 해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들도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죽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의사들도 더 이상 아무런 시도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미 다 끝났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죽어버리면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고 어떤 것도 희망할 수도 없습니다. 그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뭔가를 해볼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사람을 괴롭게만 할 뿐입니다. 이 때문에 야이로의 집에서 온 사람도 이같이 말했습니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딸이 죽었는데, 이미 다 끝났는데 예수님께 매달려봐야 다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능력이 많아서 그동안 병자들을 다 고쳤을지라도 죽은 자는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고, 중풍병자를 일어나 걸어가게 했을지라도, 열두해 혈루증 걸린 여인도 고치셨을지라도 죽은 자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이니 이제 포기하고 그냥 집으로 가서 딸 장례나 치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 앞에선 사람의 모습입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죽음에 대해서 우리 인생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곁에서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무엇이라 하십니까?

같이 36절을 한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직 다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딸아이가 죽어 버림으로 모든 것이 이미 다 끝났다고 여겨지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조금도 문제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죽음은 부정의 최고의 단계입니다. 앞에서 예수님은 부정 자체를 없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혈루증 걸린 여인을 치료하면서 이 사실을 앞에서 야이로에게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부정자체를 없이할 수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부정의 최고 단계인 죽음문제도 예수님은 능히 해결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야이로는 지금 눈에 보이는 상황앞에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없는 자들이 하는 말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처음에 딸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그가 예수님을 믿은 것 같이, 딸이 죽어버린 이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계속 믿어야 합니다. 그가 처음 가졌던 그 믿음을 계속 고수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믿음대로 주께서 그의 딸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끝까지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야이로가 믿음이 흔들릴 그때 다시 그를 불잡아 준 것은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예수님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그 사람이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꼭 필요한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연약해질 그때에 다시 말씀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말씀을 근거로 다시 믿음을 가지면 됩니다. 상황이 달라지더라도 자기가 처음에 가진 믿음을 다라고 주장하지 않고, 지금 여기서 예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음으로 예수님이 새롭게 이끄시는 믿음으로 나아가면 됩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야이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집에서 온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처음 가졌던 믿음을 회복하고 예수님을 자기 집까지 모시고 갔습니다.

이제 예수님이 일하시기 시작하십니다. 어떻게 일하셨습니까? 37절을 봅시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외에는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떠드는 사람과 울며 심히 통곡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것을 보시고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셨습니다(38,39). 그러자 사람들이 마구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은 비웃는 그들을 다 내보내고 아이의 부모와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습니다(40). 그리고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달리다굼이를 번역하면 소녀야 일어나라입니다(41). 그러자 방금전까지 죽어있던 그 아이가 곧 일어나더니 걸었습니다(42). 이를 보고 크게 놀라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 경고하시고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셨습니다(42,43).

야이로는 두려울 그때 예수님이 들려주신 말씀을 따라 두려워하지 않고 믿기만 했습니다. 그가 처음 믿었던 믿음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했을 때 그의 딸아이는 그가 처음 가졌던 믿음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중간에 상황만 달라졌을뿐 실제로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는 자의 인생을 예수님은 책임져 주십니다. 그 믿음을 따라 일하십니다.

사실 딸 아이가 구원받는 것이 야이로가 예수님께 기대했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의 믿음은 이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예수님께 기대하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의 소망이 달라졌습니다. 부활과 영생을 주시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더 큰 믿음을 가진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가다가 상황이 더 악화될 때가 있습니다. 야이로의 딸이 죽어버린 것처럼 정말 다 끝난 것 같아 보이는 상황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과 형편만 보고 두려움에 빠져 믿음을 잃어버리고 주저 앉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때야 말로 더욱 믿음을 가질 때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때입니다. 그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반드시 구원을 체험합니다. 주께서 베풀어 주시는 더 크고 놀라운 구원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이 주고자 하시는 더 좋은 선물을 얻게 됩니다. 죽음을 이기는 부활 영생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가는 인생에는 결코 실패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분도, 믿음을 갖도록 계속 도와가시는 분도 오직 예수님 한분이십니다. 믿음으로 시작된 그 인생을 결코 실족하지 않게 하시고, 구원의 삶으로 인도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이 예수님이 지금 두려워 떠는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우리가 어떤 어렵고 두려운 상황에도 계속 이 예수님만 믿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 듣고 받아 30, 60, 100배 결실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마가복음 5:36)

 

 

2024년 마가복음 9강 메시지 0521-0543 정여호수아.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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