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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017.06.27 16:07

2017년 누가복음 26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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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26강                                                                                                   김요한

누가복음 11:14-32

 

 

더 강한 자 예수님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누가복음 11:21,22)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이 누구이시기에 누구든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면 생명을 얻습니까?

 

더 강한 자(14-23)

14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말을 못하면 얼마나 속이 답답합니까. 말을 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은 귀신입니다. 곧 귀신은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으로 하여금 말을 못하게 하여 답답한 벙어리 냉가슴 앓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래서 귀신이 나갔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벙어리 냉가슴이 사라지고 얼마나 시원하였겠습니까! 이를 본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놀라운 역사에 대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합니까? 15절을 봅시다. 그 중에 더러는 – 이 더러가 항상 문제입니다 -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였습니다. 귀신의 왕이 귀신의 조무래기들을 쫓아낸다고 하였습니다.

16절을 봅시다. 그 중에 또 다른 더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였습니다. 표적은 기적입니다. 예수께서 말 못하는 귀신을 쫓아내셨으니, 그보다 더한 하늘로부터 오는 기적이 있지 않을까 하여 또 구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놀라운 생명의 역사를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생각은 각기 자기 생각대로 뭐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17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행하는 모습도 중요하게 보시지만, 이를 통해 그 사람의 생각을 아십니다. 그래서 말씀하십니다.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너희 말이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 하셨습니다(18). 귀신의 왕은 사탄입니다.

19절을 봅시다.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그들은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어떻게 귀신을 쫓아낸다 하십니까? 20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낸다는 사실을 영접한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이게 임하였다 하십니다.

하나님의 힘은 강합니다. 22절과 23절을 봅시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합니다. 그러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게 됩니다.

사탄은 강한 자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싶었지만, 사탄은 그 사람 속에 탐욕을 심고 탐욕을 따라 행하도록 하였습니다(창세기 3:1-6). 그래서 사람들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안 되는 일을 굳이 합니다. 그리고는 죄의식과 자의식과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그래서 말도 못하고 혼자서 끙끙거립니다.

그러나 더 강한 자 예수께서 강한 자 사탄을 굴복시키셨습니다.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었습니다. 사탄의 무장은 죽음입니다. 우리가 뭔가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싶으면서도, 죽을까 염려가 되어 제대로 된 삶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포기해버립니다. 죽을까봐(히브리서 2:15). 그래서 뭔가 한 번 제대로 싸워보려 하다가도 ‘죽을래?’라는 한 마디가 들리면 그만 움츠러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제대로 지혜로운 삶을 살고 싶다 하더라도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모든 것이 헛 일로 보입니다. 사탄에게 잡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강한 자입니다. 사탄에 잡힌 우리를, 죽음에 잡힌 우리를 건져내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더러는’ ‘더러는’ 이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같이 23절을 읽어봅시다.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예수님을 따를 것인지,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인지 스스로 결단하라 하십니다. 그동안 예수님 하시는 말씀과 일을 보았으니 스스로 결정하라 하십니다. 계속 반대하고 자기 뜻대로 해달라고 표적을 구할 것인지, 예수님과 함께 할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마음에 평안을 얻어서 주의 말씀을 따라가고 싶지만, 이렇게 꼭 주의 말씀을 따라야 하는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반드시 옵니다. 일대일을 하며 목자와 양이 서로 자존심을 걸고 싸우기도 합니다. 이때 사람하고 싸울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살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24-32)

24절을 봅시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더러운 귀신이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그 있던 집으로 돌아갑니다.

중고등학교 시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출을 한번 쯤 생각하고, 또 이를 실행에 옮기기도 합니다. 가출을 해본 사람들이 조언하기를 여름에는 하지 말라고 합니다. 나가면 모기한테 뜯긴다고. 겨울에도 하지 말라 합니다. 춥다고. 어쨌든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귀신도 자신이 있던 집으로 돌아가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어 있었는데, 다른 것은 없고, 텅 비어 있었습니다(25). 그래서 26절을 봅시다.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귀신 일곱이라 하면 오만 귀신 다 데려왔다는 뜻입니다. 말 못하는 귀신을 쫓아냈는데, 이제 말 못하는 귀신뿐만 아니라 별별 탐심을 부추기는 귀신들이 다 사람에게 들어갔습니다.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었습니다. 온갖 정욕과 탐욕에 잡혀 사람들과 갈등하고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 되어서 귀신이 딱 들어가기에 좋았습니다. 다른 무엇으로 채워져 있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어떤 대학생이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정욕적으로 살았던 것, 시간나면 만화방에 가고 무협지 읽은 것들을 회개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멍 때리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나자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시간이 났는데, 만화방에는 가기 싫고 무엇을 할까 싶다 하였습니다.

과연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27절을 봅시다. 이 말씀을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28절을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낳은 그 태가 복이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제대로 된 삶을 살면 이웃 사람들이 다 여러분들의 어머니를 칭찬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 하십니다. 이로 볼 때 이 말 못하는 귀신이 쫓겨난 그 곳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으로 채워졌어야 했습니다. 말씀을 계속 듣고 지키는 인내하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귀신 쫓겨난 것으로 마냥 그대로 있으며 죄악된 본성대로 행하게 되면 귀신이 더 많은 친구 귀신들을 데려와 그 안에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하는 것이 믿음 생활에 있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합니까? 과로사하고 개죽음 당할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말씀대로 지켜 가겠습니까? 말씀은 분명히 증거합니다. 혈통으로는 되지 않는다 하십니다(요한복음 1:13상). 이세들 중에서 믿음이 없는 사람 많습니다. 그래서 ‘모태’ 신앙을 ‘못해’ 신앙이라고도 합니다. 육정으로도 되지 않습니다. 나의 어떤 의지로 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저 사람을 한 번 변화시켜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뜻으로도 되지 않습니다(요한복음 1:13중). 요한복음 1장 13절 하반 절에서 증거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났다 함을 믿는 것을 말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한복음 1:12)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참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무슨 내 의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겠습니까? 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나에게는 자격이 없지만, 이렇게 들을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일 줄 압니다.

29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도 표적을 구하는 세대,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에 반대하는 세대, 이 세대가 악한 세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고도 지키지 않는 세대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악한 세대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욕심에 따라 끊임없이 표적을 구합니다. ‘중간고사를 잘 치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기말고사 때 까지 공부를 하지 않고 있다가 기말 고사를 앞두고 또 ‘잘 치게 해주세요’ 하며 기적을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토요일에 로또 한 장을 앞에 두고 ‘주시옵소서. 백억이 되면 구십구억은 드리겠습니다.’ 기도합니다. 표적을 구합니다. 되겠어요?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표적을 구하는 악한 세대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고 하십니다(29). 요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가 적국인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하기 싫었겠어요. 그래서 니느웨와는 반대편인 다시스로 도망갔습니다. 배를 타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보실까봐 하늘에서 가장 먼 배 밑바닥에 납작 엎드려 잤습니다. 마침 폭풍이 일어나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제비를 뽑았는데, 제비가 딱 요나에게 뽑혔습니다. 요나가 할 수 없이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나님 말씀 듣지 않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배에서 자신을 던지라 하였습니다. 요나가 그래서 큰 물고기 배 속에 들어갔습니다.

물고기 배 속이 어떤지 혹시 아십니까? 우리 중 어떤 형제는 동태 국을 싫어합니다. 동태 국을 끓이려고 동태 손질을 하려고 배에 칼을 대니 배가 터지면서 내장들이 다 튀어 나오는 것을 보고는 그 이후로 동태 국을 멀리 합니다.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는 캄캄한 그 배속에 요나가 들어갔습니다.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흘 만에 튀어나와서는 물고기 뱃속에서 썩은 냄새 맡는 것보다는 니느웨에 가서 말씀 전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기는 전하는데, 혹시 그 사람들이 회개할까 싶어서 ‘회개하라’고 아주 작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이 그만 그 말을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기근이 들어 너무 힘들어 있던 차에 무슨 방도가 없나 찾고 있던 차에 ‘회개하라’ 하니 그만 회개하였습니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30) 그래서 예수께서 요나가 사흘동안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죽을 고생한 것 같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고 하십니다.

31절을 봅시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할 것입니다.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계십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할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요나보다 더 큰 이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여기 계십니다(32).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여기서 말 못하는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런데도 이를 보고 들은 이들이 회개치 않았습니다. 왜 그들이 회개치 않을까요? 사탄에게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탄보다 더 강한 자이십니다.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오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사탄보다 더 강한 자이십니까? 사탄은 ‘죽을래? 너 그러다 인생을 망쳐!’ 이런 위협을 사람에게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옳은 일이라 할지라도 그 일을 하기가 싫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강한 자로서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된 것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의 사람들에게 그러하리라” 예수님은 사탄에 잡혀 탐욕대로 할 수 밖에 없는, 정욕에 따라 행할 수밖에 없는, 자기 자랑에 따라 할 수 밖에 없는 그 사람들을 위해 그 죄 값을 한 번에 십자가에서 치르셨습니다. 그리고 장사된 바 되어 무덤에 갇히셨습니다. 이 길을 예수께서 가고자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실까요? 사랑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멸망시켜 자기의 종으로 삼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살리려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습니다(요한복음 3:16). 어떤 목적으로 하느냐, 사랑으로 하는지, 욕심으로 하는지가 분별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은 우리를 위해 나신 구주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라 하였습니다(누가복음 2:12).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 버림받은 아기, 연약한 아기, 우리의 모습과 똑 같이 아기로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와 똑 같이 부모의 돌봄으로 자라나셨습니다. 기도도 하지 못하는 연약한 우리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시고 기도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예수님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그 중에 수제자인 베드로는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로마서는 우리에게 증거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 우리 부모님은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십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부모의 사랑을 압니다. 그러나 부모의 사랑으로도 사람의 죄를 막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모스트, 다리 관리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배가 지나가면 다리를 올리고, 기차가 오면 다리를 내려야 합니다. 다리가 올려 진 상태에서 그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그만 다리를 올리고 내리는 기계 있는 곳에 내려갔다가 미끄러져 그만 기계에 끼고 맙니다. 기차는 오고 기계에 끼인 아들을 구할 시간은 부족하고, 다리를 내리지 않으면 기차에 있는 사람들 다 죽게 생겼고, 어떻게 해야 할지 끙끙거리고 고민 고민 하다가, 기차가 지나가도록 다리를 내립니다. 아들은 죽었습니다. 그런데 기차에 탄 사람들은 이를 모릅니다. 사랑하는 연인들은 사랑을 나누고, 마약 하는 사람은 무심하게 마약을 합니다. 다리 관리인은 죽은 아들을 안고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며 지나가는 기차를 보고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실을 모릅니다. 내 죄를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내 욕심대로 해달라고 하나님께 표적을 구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는 사람은 사탄이 쏘는 이 ‘죽을래’ 하는 위협을 넘어섭니다. 탐욕에 잡힌 삶에서 구원해내십니다. 사탄에 잡혀 자존심 세우느라 세월을 허비할 사람을 구원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길을 따라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거룩한 길을 가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사탄보다 더 강한 분이십니다. 사탄은 탐욕을 부추깁니다. 탐욕에 잡혀 멸망의 길로 가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내어놓으시는 사랑으로 사람을 살려내십니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십니다(히브리서 2:14,15).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주요 또 우리로 온전하게 하시는 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히브리서 12:2). 누구든지 피곤하고 낙심이 될 때 이같이 자기에 거역한 일을 참으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죄와 싸울 수 있습니다. 싸워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히브리서 12:3,4).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은 사탄의 지배에서 벗어나 온전한 생명의 삶을 누립니다. 아멘! 우리 각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하여 우리의 탐욕을 부추기는 사탄의 지배에서 온전히 벗어나 생명과 빛과 사랑을 누리고 나누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누가복음 11:21,22)

 

2017 누가복음 26강 메시지 1114-1132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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