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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3 15:42

2017년 누가복음 22강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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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누가복음 22강 김요한

누가복음 9:37-62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9:62)

누가복음 9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인자가 고난 받고 죽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하시는 이 말씀이 제자들이 생각하는 것 하고 달랐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이 당황 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조용히 묵상하도록 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주님의 영광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37-45)

37절을 봅시다. 이튿날, 곧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예수님의 변화된 모습을 산에서 보고 성숙한 종들인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거기 살았으면 좋겠다고 한 그 이튿날입니다. 제자들의 눈에는 예수님만 보였고,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예수님을 맞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큰 무리가 기다리는 산 아래의 삶을 살고자 하셨습니다.

산 아래의 삶이 어떠합니까? 38절을 봅시다. 큰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말하였습니다.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하였습니다. 그의 아들은 그에게 외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외아들이 귀신에게 잡혀 갑자기 고함을 지르고 경련이 일어나고 거품을 흘렸습니다. 귀신이 그를 그 외아들을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갔습니다(39). 외아들은 기진맥진 녹초가 되었고, 그러니 그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 제자들에게 데려와 귀신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하며, 예수님이 내 아들을 구해 달라고 소리 질러 호소했습니다(40). 그러면 예수께서 그 아들을 불러 귀신을 내어 쫓아주셔야 되겠는데, 예수께서 귀신을 내어 쫓으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41절을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예수께서 그 아들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으시기 전에 우리가 아는 예수님 같지 않게 뭔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라 하셨습니다. 믿음이 없어서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세대라 하셨습니다. 이 세대에는 제자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제자들에게 고난 받고 죽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는 그리스도의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산 아래 있든, 산 위에 있든 제자들은 여전히 믿음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산 위에 있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그리스도의 길을 듣고는 그 길대로 가시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 길 보다는 차라리 이미 하늘에 오른 믿음의 선배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산에서 그대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믿음 없고 패역한 말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산 아래에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은 왜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함께 산에 가셨을까, 남은 우리는 뭘까?’ 그런 생각 하느라, 이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은 체험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믿음이 없고, 패역해서 그 아들에게 있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언제까지나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며 그들을 참을 것인지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도 참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아들을 데려 오라 하셨고,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셔서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셨습니다(42).

그러자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랐습니다. 그들이 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겼습니다(43).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이때 제자들에게 있으셨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있으십니다.

그래서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같이 44절을 읽어봅시다.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 하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는 이 말씀을 귀에 담아 두고 마음에 담아두기를 원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알지 못하였습니다(45). 이는 그들로 깨닫지 못하게 숨긴 바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그들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귀에 담고 마음에 담아 생각하여야 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께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하였습니다(45).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말씀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매년 여름수양회에서 십자가 말씀을 공부하고 메시지를 듣고 소감을 쓰는 이유는 예수께서 십자가 말씀을 우리 귀에, 마음에 담아두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들었으나 깨닫지 못하여 묻기도 두려웠을 때 제자들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서로 누가 크냐 변론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46-56)

46절을 봅시다.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났습니다. 제자들의 당시 관심은 제자들 중에서 누가 크냐?’ 였습니다. 특히 예수님과 함께 산에 올랐던 제자들과 산 아래 남아 있었던 제자들 간에 누가 크냐하는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안드레가 특히 마음이 많이 상하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요한 야고보 형제는 데려가셨는데, 자신의 형제인 베드로는 데려가시고 왜 나는 남게 하셨을까?’ 그래서 형이 크냐, 동생이 크냐?’ 아니면 누가 먼저 예수께 나온 사람이 크냐?’ 이런 논쟁이 벌어졌을 것입니다. 그동안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조용하던 다대오까지 이 변론에 동참하였을 것입니다. “누가 크냐?” 하는 이 주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제자들에게 있어 중요한 변론제목입니다.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이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47절을 봅시다.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예수님 곁에 세우셨습니다. 이를 읽었는지,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들이 가끔 어린 아이를 이렇게 안고 있는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48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인자가 장차 죽임을 당하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누가 크냐?” 하고 변론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영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라 하십니다. 사람들은 대개 어린 아이를 조금 아래로 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사탄 영접할래, 예수님 영접할래?’ 물으면 당연히 예수님 영접하지요.’라 말합니다. 그러나 어린 아이 영접할래, 예수님 영접할래?’ 하면 당연히 예수님 영접하여야 하겠지만, 왜 이렇게 물으시지 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면 곧 예수님 보내신 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 나라에 있는 것이지 아니겠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알 듯 말 듯 말씀을 하시면서 결론을 내려주셨습니다.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가장 작은 그, 곧 어린 아이, 나이 어린 자, 후배를 말합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장유유서 질서가 강합니다. 형제가 있으면 동생이 서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동생이, 후배가 가만히 있으면 선배들 형들은 쟈가 왜 저러고 있지?’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라 하십니다. 그러니 자신을 가장 작은 자로 여기고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말씀입니다. 곧 자기를 작게 여기고 섬기는 자가 큰 자입니다.

미국 병원에서 사람들이 같이 쓰는 사무실에서 아무도 청소를 하지 않는데, 물론 청소 하는 분이 따로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선교사로 가신 분이 뭔가 섬길 일이 없을까 해서 청소를 했습니다. 그러자 미국 사람들이 그를 달리 보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부탁할 일이 있으면 그 선교사에게 부탁했고, 이를 그 선교사가 들어주었습니다. 그 이후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사람들이 그 선교사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정보를 공유하게 되었습니다. 그 선교사는 어느 듯 그 병원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든 일에서 가장 작은 그가 큰 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행합니다.

그러나 작은 자의 삶을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49절을 봅시다.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요한이 예수께서 여쭈었습니다.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금하지 말라하셨습니다.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하셨습니다(50). 대부분의 사람은 믿음으로 산다 하면서도 사람을 보면 내 편인가 아닌가,’로 나눕니다. 예수께서는 나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위하는 자니라 하십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행하는 것이 작은 자의 삶입니다.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 또 사람을 보면 우리 편이냐 아니냐?’ 다투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51절을 봅시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곧 고난 받고 죽인 당하시는 이 일을 하기로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예수님 결심의 근거는 승천하실 기약이 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의 때보다 내 때에 관심이 많습니다. 내가 어떻게 되는가? 내가 어떤 취급을 당하는가? 여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어떤 반응이 보이든지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에 따라 결단하셨습니다. 이 결단은 예수님 입장에서도 쉽지 않으셨던 것 같습니다. 굳게 결심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하라고 하십니다. 말씀, 들은 바 말씀을 견고히 붙들라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을 굳게 붙들고 결심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며 그들이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습니다(52). 그런데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였습니다(53).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예배하는 곳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유대인들을 싫어했습니다. 유대인들과 원수지간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성질 급한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54) 속 시원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을 돌아보시며 꾸짖으셨습니다(55). 그리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56).

예수님은 내 편이 네 편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바리새인들이라 할지라도 그들이 변화되어 구원 얻기를 원하십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구원 얻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가서 뭔가 새로운 일을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다른 마을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를 따라 움직이십니다. 당시의 때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준비하고 제자들에게 복음을 심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어떤 말씀을 주셨습니까?

쟁기를 잡았으면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57-62)

57절을 봅시다.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예수께 여쭈었습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대단한 결단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같이 58절을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머리를 두어야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어 머리 둘 곳이 있어 잠을 잡니다. 공중의 새도 집이 있어 잠을 잡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사람의 모습으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오신예수님은 머리 둘 곳이 없습니다. 예수님 따르는 제자들은 이를 각오하고 따르라 하십니다.

그리고 59절을 봅시다. 또 다른 사람에게 예수께서 나를 따르라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하였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일은 어느 문화권에서나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께 허락을 구하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60절을 봅시다.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예수님의 말씀은 장례를 치르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 하십니다. “너는이때 는 죽은 자가 아니라 산 자입니다. 그에게 하나님 나라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는 하나님 나라 소망이 없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는 제자들은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하십니다.

이 말씀을 듣는 자가 제자들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고 있는데, 나는 지금 여기서 어떻게 해고 있는지 이 말씀을 따라 스스로를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실제에서 내가 지금 무엇을 먼저 하고 있는지 살펴보면 예수님은 어느 듯 뒤로, 저 뒤로, 맨 뒤로 밀려 버리고 맙니다.

61절을 봅시다. 또 다른 사람이 일렀습니다.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님을 따르더라도 가족하고 작별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62절을 같이 읽어봅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쟁기는 쇠로 되어 있습니다. 무게가 40kg이 넘습니다. 소에다 쟁기 메어 사람이 쟁기를 잡고 밭을 갑니다. 훈련된 소가 쟁기를 끕니다. 쟁기를 잡은 사람이 뒤를 돌아보면 밭고랑이 똑바로 갈리지 않습니다. 삐뚤삐뚤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이름 부른다고 급히 돌아다보면 쟁기가 튀어 쟁기 잡은 사람이 다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쟁기를 잡았으면 꽉 잡고 앞을 보고 가야 합니다.

쟁기를 잡았다는 것은 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결단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따르기로. 그냥 밭둑에 앉아 있을 때와 쟁기를 잡았을 때가 다릅니다. 쟁기를 잡으면 긴장이 됩니다. 앞을 보고 가야 합니다. 제자들이 봐야 할 목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듣고 지키어 인내하여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그 결실에 이르기까지 목표를 향해 바로 가야 합니다.

가끔씩 누군가 불러서 길에서 조금 벗어날 수도 있지만, 목표가 분명하면 그 목표를 다시 찾고 그 목표를 잃어버리지 않고 찾아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하라는 말씀입니다. 목표가 분명하지 못하면 롯의 처와 같이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맙니다(창세기 19:26).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 하는 제자들이 너무 싫어서 그들을 잡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는 부활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 소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립보서 3:13,14)

빌리 그래함 목사가 말하기를 과거는 지나갔다, 미래는 내가 하기 나름합니다. 과거에 죄 가운데 있었다 하더라도, 학교 다니면서 올 A+를 받았다 하면 이는 옛 이야기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를 일입니다. 앞으로의 일은 내가 지금 여기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과거에 매이면 앞을 잃어버립니다. 목표를 잃어버립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가는 사람입니다. 온전해진다 함은 하나님 나라에 있을 때만 온전해집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 썩을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 있게 될 소망을 가집니다. 이 소망이 있으므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하며 결실하기 까지 그 길을 갑니다.

우리 각 사람이 때마다 뒤를 돌아보기보다, 앞을 보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하여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누가복음 9:62)


2017 누가복음 22강 메시지 0937-0962 김요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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